[백일장]

    소울 푸드 뜨더국

    작품내용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던 날, 찬 서리 흩뿌리는 겨울날 할 것 없이 할매는 늘 뜨더국(수제비)를 끓여주셨다. 비지땀을 흘리며 정신없이 한그릇 뚝딱 삼키던 어린 시절의 아련함과 더불어, 옆집 공주댁네로, 쌀집 회령 아바이네로 음식을 나눠주면 영낙없이 답례로 남한과 북한 음식이 우리 집 밥상에 올랐다. 그렇게 완성된 통일밥상, 지역별로 수제비를 칭하는 명칭은 다르지만, 속절없이 흘렀던 세월 속에 그리움 꾹꾹 눌러 담아 모두가 함께 수제비를 뜨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슬비보다 가늘고 안개보다 굵은 
    눈개비 오던 날
    굵은 빗방울 땅바닥 후려치는 
    자드락비 내리던 날
    추적추적 가을비에 싸늘한 공기가 폐부에 와닿던 날
    찬 서리 흩뿌리는 겨울 날
    할매는 어김없이 뜨더국을 뜨셨다.


    투박한 손으로 
    밀가루에 물을 묻혀가며 반죽을 했다.
    뽀송뽀송한 밀가루가 물을 만나면 
    찰기를 드러내며 엉겨 붙고
    입 안에 털어 넣은 밀알이 씹히고 씹혀 껌이 되듯
    손아귀에서 주물러지는 밀가루는 
    주무를수록 부드러워졌다. 


    말랑말랑한 반죽덩이를 얇게 늘려가며 
    물 묻은 손으로 뚝뚝 떼 수제비를 끓여주셨던 울 할매.
    멸치육수에 텃밭 애호박 감자를 넣고
    간장으로만 간을 해 뜨끈하게 끓인 뜨더국은
    새큼하게 익은 총각김치와 먹으면 찰떡궁합! 
    씹을 사이도 없이 목줄을 타고 넘어가던 그 맛
    비지땀을 흘리며 정신없이 먹던 시절이 아련하다.


    뜨더국 한 그릇이 정과 함께 토담을 넘어 
    옆집 공주댁네로 넘어가고
    쌀집 회령 아바이네와도 나눠먹으면
    쫄깃한 쇠머리떡 한 덩어리와
    큼지막하게 빚은 회령 손만두 한접시가 
    정과 함께 울 집 밥상에 올랐다.
    그렇게 연변 땅 어느 시골에선
    통일밥상이 완성되었다!


    경상도에선  밀제비, 수지비
    전라도에선 떠넌죽, 다부렁죽 
    북한과 내 고향 연변에선 뜨더국 
    닭육수를 쓰는 황해도에선 또덕제비 
    제주도 수제비는 메밀저배기...


    아무렴 어떠랴!
    이리 치대고 저리 치대고를 반복해야
    반질반질해지는 밀가루 반죽처럼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듯이
    속절없이 흘렀던 세월 속에 
    그리움 꾹꾹 눌러 담아
    정성 고이 접어 하늘하늘 빚은 뜨더국
    마음의 빗장 열고 함께 뜨는 날이 오기를!

  • 대상

    소울 푸드 뜨더국

    추이하이란

  • [백일장]

    냉면

    작품내용

    냉면 이야기와 우리가 말하는 ‘온도리’ 이야기는 작은 마을에서 추운 겨울에 일어납니다. 수확과 그 고된 일은 결국 주방에서 기쁨과 흥분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바닥 아래 구들장에서는, 야채와 양분 대신에 질투와 악한 계획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졌을까요? 이야기가 변화되어가면서 아이들, 어른들, 악한 인물, 그리고 주인공들은 동일한 의도로 모이게 됩니다. 바로 음식을 즐기는 기쁨은 금방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디지털 그림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이야기와 관련된 핵심 부분을 부각해주고 있으며, 폰트는 내가 직접 만들어낸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매우 오랜 어느 추운 겨울에 어느 작은 마을에 한 무리의 마을 사람들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모였으니, 바로 제철 음식인 냉면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야외 눈에서 놀고 있는 가운데, 어른들은 고된 일들을 분담해서 감당했습니다.

    몇몇 어른들은 가을 추수를 통해서 거둔 특별한 재료인 메밀과 동치미를 가져왔습니다. (동치미는 김치국물을 얼려서 분쇄한 일종의 음료/음식입니다.)

    한 주민이 말합니다. “오이, 무, 배를 자릅시다!” 그 사이에 어름과 매운 겨자 기름, 그리고 식초를 준비합니다.

    나무로 만든 묵직한 기계를 사용하여 꼬들꼬들한 맛있는 국수를 뽑아내고 있는 부부가 말했습니다. "여기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겨울은 고된 일이 끝나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는 농한기라서, 이런 모임은 매우 큰 파티였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먹고 노래하고 웃고 즐기는 가운데도, ‘온돌이’는 무엇인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집 바로 아래 구들장(겨울 동안 집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바닥)이 얼마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불안했던 것이다.

    ‘온돌이’는 다른 돌들에게 말했다. “친구들아, 참 재미있다. 저 색깔과 다양한 재료들 그리고 야채들을 봐라! 그들의 잔치에 함께 하면 어떨까? 나는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온돌이’가 그 친구들에게서 들은 말은 “음~~~”이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이 지루한 친구들과 함께 이 지하 바닥에 있고 싶지 않아! 나는 밖으로 나가서 그들과 함께 잔치에 참가하고 싶다.”

    한편, 주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기쁨과 맛, 영양이 어우러진 결과, 2주 동안 충분한 냉면이 준비된 것입니다.

    어른들은 방에 둘러앉았고, 아이들은 상에 차려진 음식을 보자마자 하던 놀이를 제치고 집 안으로 뛰어들어서 배가 터질 만큼 냉면을 먹었습니다.

    어른들은 이번 겨울에 만든 조리법이 작년보다 더 맛있다며, 동치미를 땅에 몇 센티미터만 더 깊게 파서 더 많이 얼리면 그 맛이 더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만찬이 진행될수록 돌인 온도리는 점점 더 화가 나고 질투를 느꼈습니다. 그는 왜 아무도 그를 초대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지하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허비한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수를 준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온도리’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냉면을 못 먹게 해야 하겠다. 그래서 그들이 이 잔치를 누릴 수 없어지고, 결국 나 같이 그들 역시 지루하게 될 거야!”

    새벽 5시인데, 방에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가 먼 곳까지 들려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둥그스름한 배를 하고는 자고 있었습니다.

    ‘온돌이’는 자신의 복수 계획을 실행하기 딱 좋은 때라고 판단하고, 천천히 구들장에서 기어 나왔습니다.

    ‘온도리’는 밖으로 나와서는,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소음을 내고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 따듯한 돌이 눈 위에서 소음을 내고 있었지요. ~~ 사각사각 

    눈이 녹는 그의 발걸음 소리에 어린 소녀인 ‘지현’이 깨어났습니다.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지현’이가 창밖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그 돌을 보았고 다른 아이들을 깨웠고, 아이들은 그 악당(온도리)이 음식에 접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음식은 부모님들이 오랜 시간으로 노력하여 준비한 결과였으며, 건강하고 맛있는 영양소를 함유한 완벽한 음식이었습니다.

    “그 냉면을 그 악당(온도리)이 망치려고 한다. 이것을 막아야 한다!”라고 그들은 파악했습니다.

    그들은 밖으로 달려나가 그 악당(온도리)을 막으려 했지만, ‘온도리’는 불을 더 뜨겁게 해서 아이들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불로 태워버릴 것이고, 냉면은 이제 없어질 거야. 우하하~~~!”

    "왜 이런 짓을 하는거죠?" 막내인 ‘윤’이 물었습니다.

    ‘온도리’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심심했는데, 내가 지하에 구들장에 있을 때에 너희들은 냉면과 잘도 놀고 있더라. 내가 초대 받지 못한 것을 보면서, 나는 것을 이것을 감당할 수 없었어. 그래서 이 잔치를 망치기로 결심했지!”

    가장 어리지만 똑똑한 소년 ‘윤’은 ‘온도리’의 악한 계획을 막을 묘안을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를 토기그릇에 넣어서(냉면을 위해서 준비하는 동치를 만드는 방법 같이) 땅에 파묻고, 눈으로 그 위를 덮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일동안 ‘온도리’가 냉기에 얼고, 그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열기가 더 이상은 냉면을 망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소년들에게 ‘온도리’를 속이고 토기에 들어가도록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계획대로 한 소년이 돌(온도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단다. 저녁 식사에 너도 함께할 수 있어.” 그러자 다른 아이가 말을 더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먼저 준비를 해야 한단다.”

    "준비한다고?" ‘온도리’는 좀 혼란스러웠지만 그들의 초대를 분명히 받았기에, 화를 약간 누그러트리면서 물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말을 거들면서, 두 명의 아이들이 손에 토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맞아! 동치미 보이지? 잔치 전에 미리 준비된 것이란다.”

    ‘윤’은 말했습니다. “네가 할 일은 그저 여기에 들어가서 며칠만 기다리면 되는 거야. 잔치가 준비되면 그냥 나오면 된다!”

    아이들에게 ‘온도리’가 물었습니다. "며칠? 시간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그러자 ‘윤’이 답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몇 주 동안 즐길 냉면은 충분하거든! 그리고 네가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너와 함께 놀아 줄게.”

    ‘온도리’가 말했다. “진짜? 그래 진짜 재미있겠다. 사실 나는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 나는 단지 지루함이 끝나기를 바랬지. 집 아래 구들장은 정말 지루하고, 함께 있던 다른 돌들은 낡았고 재미없었거든.”

    ‘지현’은 그 돌(온도리)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그 마음 속 깊은 곳은 악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냉면’과 ‘온도리’가 함께 어울려서 어른들 모두들과 함께 기뻐하며 즐기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 ‘온도리’의 복수계획과는 달리, 아이들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실행되고 있었습니다. ‘온도리’를 토기에 넣어서 구덩이를 파고 묻고 눈으로 덮어서 집 바로 앞에 놔두었습니다.

    아이들은 토기에 ‘온도리’를 넣어서 들고 다니면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일들을 감당하면서 배가 고파졌고, 그래서 지켜온 냉면을 조금씩 나누어 먹었습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일제히 말했습니다. 오랜 시간 추운 겨울에 먹었던 냉면의 시원함과 작지만 따스함이 함께 뒤섞인 것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작은 돌 덕분에 찬 음식으로 더위를 식히는 상쾌한 효과인 ‘이열치냉’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윤’이 말했습니다. "놀라운 이 느낌이란!”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온도리’ 덕분에 이 음식이 이렇게 맛있게 느껴진다는 것이 놀라운데!”

    “그래, ‘온도리’ 덕분에 냉면이 더 맛있어졌어!” ‘지현’이 계속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다 함께 즐기는 방법 말이야! 어른들께도 그것을 알려드리고 느끼도록 해드리지!"

    어떤 아이들은 서둘러 부모님을 깨우고, 다른 아이들은 ‘온도리’를 파묻은 곳으로 가서 토기를 파냈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 파내는거야?" ‘온도리’가 혼란스러워 하며 물었다. “며칠 동안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윤’은 대답했습니다. “미안해. 사실은 네가 냉면을 망치는 것 같아서, 우리들이 냉면을 지키기 위해서 너를 속인 거야.” 이어 ‘지현’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네가 악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너 때문에 냉면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단다.”

    "무슨 소란이야?" 집에서 자다가 깨어난 어른들이 아직 졸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윤’이 말했습니다. “다들 오셔서 ‘온도리’를 만나보세요.” 어른들은 온기가 느껴질 때까지 그 돌(온도리)에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접시에 냉면을 담으면서 ‘지현’이 말했습니다. "이제 함께 모여서 냉면을 먹어보도록 하지요!".

    “오오~~~” 어른들의 입에서 동일한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어른들 역시 처음으로 ‘이열치냉’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제철 음식인 훌륭한 맛을 자랑하는 냉면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었음에 ‘온도리’에게 감사하면서, 그 주변으로 모여서 노래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온도리’가 말했습니다. “이 잔치를 망치려고 했던 것을 용서해줘. 지금 나는 너무나 행복하단다.”

    ‘윤’이 말했습니다. “걱정 하지마라.”

    ‘지현’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너는 이번에 무엇을 알게 되었니?”

    ‘온도리’가 답했습니다. “응! 내가 행복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복수할 필요가 없다는 걸 배웠어”

    ‘온도리’의 온기와 냉면의 시원함을 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느낄 수 있기를 마을 사람들은 원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그 느낌을 영원히 만끽하기를 원했습니다.

    ‘지현’은 마을 사람들에게 제안했습니다. “하늘에 기도해요.”

    그래서 그 돌(‘온도리’)과 아이들과 어른들은 냉면을 중심으로 모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윤’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하늘이여, 크고도 큰 하늘이시어. ‘온도리’와 작별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지현’이 이어서 기도했습니다. “하늘이여, 크고도 큰 하늘이시어. 7월에도 냉면을 즐기게 해주세요.”

    어른들이 이어 기도했습니다. “하늘이여, 크고도 큰 하늘이시어.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여, 곡식들을 공급하며, 하늘의 요청에 반응하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하늘의 답장이 내려왔습니다.

    ‘지현’이 그것을 받아서 큰 소리로 낭독했습니다.

    너희들의 요청을 수락하마. 나무들의 색갈이 바뀔 때를 예리하게 주시해라.

    세상과 너희들의 집 주변에 나무들이 붉어진 후에, 냉면이 떠나가고 ‘온도리’의 온기가 도래하면, 영양분과 맛이 하나로 만나게 될 것이다.

    나무들이 꽃으로 덮인 이후에, 모든 필요한 요소가 모두 구비될 것이다. 내가 항상 축복을 내려주겠다. 메밀 추수가 잘 되기를, 풍성한 동치미와 부족함 없는 어름, 오이와 무 등의 필요한 모든 것들이 너희들의 식탁에 풍성하리라.

    겨울이 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희들이 친구가 되었으니, 너희들의 먹는 즐거움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며, 지금부터 시작해서 7월 여름때까지 함께 누리게 해주겠다.

    내가 너희들에게 중요하다 싶어서 요구할 것이 있다. 다른 마을에도 질투가 기쁨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겨울 뿐만 아니라 여름에도 냉면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면의 길이는 장수를 상징한다고들 하는데, 면에 들어 있는 야채와 재료, 특별히 섬유질은 냉면을 즐기는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로 냉면을 먹을 때는 면을 자르지 않고 먹게 되었는데, 이는 미움을 이겨낸 우정을 상징하며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강해지는 결속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 최우수상

    냉면

    Angie Marcela Páez Monroy

  • [백일장]

    나의 첫 번째 김장

    작품내용

    한국 음식에 대한 저의 관심은 첫 한국 여행을 마친 뒤 2021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 돌아와 한식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제 블로그는 이탈리아 최초의 한국 요리 전문 블로그였습니다. 한국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김장입니다. 부산에서 온 친구들과 김장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고 그 경험담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생각에 김치와 김장은 한국을 특별하게 만드는 한국 음식의 문화적 측면입니다. 김장의 전통은 한반도의 역사와 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김장을 경험하는 것은 한국 문화와 한국인에게 내재된 공동체 정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Korean cuisine - Hansik - has a high cultural and symbolic value that is only comparable to other few cuisines all over the world. Korean food is without any doubt one of the cooking cultures most rooted in the country history and philosophy.  Tasting and cooking is an effective way to learn about a culture and when it comes to Korea, preparing kimchi with locals is one of the most interesting experiences you could do. Kimjang consists of the preparation of big quantities of Kimchi, probably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dish of Korea. This preparation is often done with relatives, friends and neighbours and it is, together with the preparation of the jang (fermented Korean sauces), a unique tradition of Korean cuisine.  Kimchi is usually prepared before the winter, to preserve fresh vegetables harvested during summer and autumn throughout the cold season. The tradition of preparing kimchi dates back to more than 2000 years ago. Being an agricultural society during that period, kimjang was also a way of creating relationships and exchange knowledge between villagers while sharing workload. This rural collectivism, tracing back to the I b.C., had two fundamental expression called ture and pumasi. If ture involved mostly male farmers hired by authorities for the rice plantation, fieldwork and other activities, pumasi, on the other hand, was a smaller scale activity that involved also women and children and their tasks included also kimchi preparation.  The recognition of kimchi as essential part of Korean food culture led Kimjang to be inscribed in 2013 on the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y.

    During the three months I lived in Korea, I had the chance to join a kimjang in the house of some friends in Busan. Kimjang is a collective effort and the preparation of vegetables, making of the sauces and storage of the kimchi can take up to two days. Work started early, around 6:30 AM, so after a quick breakfast we were ready to start. We collected all the vegetables (radishes, Korean cabbages, spring onions and carrots) and wash them well to eliminate any traces of dirt. Removed the brown and old leaves from the cabbages but keeping one of the outer green ones: this was needed to wrap the cabbage at the end of the preparation.  
    Second step was to add salt to cabbages and the radishes and then putting them aside for a few hours to eliminate the excess of water and make the leaves softer. In the meantime we started to peel and slice the other vegetables. A tedious and repetitive task that that we did all together while chatting and sharing stories. The radishes were diced to make kkakdugi.

    A crucial step of kimjang is the preparation of the sauce that was going to be used for the kimchi. This sauce was made by mixing water, rice flour, chili pepper flakes, fish sauce, crushed garlic, sliced onion and minced ginger. The sauce we made was bright red, preparing our palate to the spicy kick of the kimchi. We mixed everything by hand, and my friends recommend that if I do it by myself, I shouldn't forget to use gloves.


    Lunch time came quickly, so we had a simple meal that included bap (steamed rice) and guk (soup). After a nice coffee, my friends needed an afternoon nap. As I usually don't sleep in the afternoon, I took the chance of this break for exploring the neighbourhood. My friends lived in a residential area of the Dongnae neighbourhood of Busan. This is one of the oldest neighbourhoods of Busan, where important archaeological sites such as the ancient tombs of Bokcheon-dong are located. My friend's house was at the bottom of an hill, so I decided to enjoy the sunny weather by walking towards the top of the hill, hoping the view would be worth. The streets were silent and the atmosphere around very quiet: it felt like everybody was taking a nap or were out to work in the city center. I met only a stray cat, as I start walking uphill. On the top of the hill, I had a view on the low houses with blue roofs underneath and on the other side of the city, I could admire the skyscrapers. I sat on a bench and relaxed there for a while, warming myself up at the sun, before going back to the kimchi-making. When I got back, after one hour, my friends were still sleeping, so I prepared coffee for everyone and played with the two cats of the house. After a while, my friends woke up and we started working again. It was the moment to prepare some delicious kimchi.

    Preparing kimchi takes time but also space. In fact, next thing we did was making some space in the living room, since we were going to need it. Making kimjang, even if it's small scale, requires enough room. We cleared the living room from table and chairs and laid plastic sheets and newspapers all over the floor to avoid any spill on it. We were ready for the next step of our kimjang.

    To prepare cabbage kimchi a generous amount of sauce is spread between each leaves of the cabbages, and then the cabbages are wrapped with the outer leaves before placed in a clean container that will be stored in the fridge. In the past, kimchi was placed in earthenware pots called onggi and then dig in the soil until the opening: in this way the temperature of the kimchi would be kept constant and ideal for the fermentation process, despite the cold winter temperature. A lot of people still uses those pots and you could easily see them on balconies or gardens of Korean houses. My friends gave me good tips on how to proceed, so after a slow beginning and a more "cautious approach" from my side - my friends were suggesting me to add more spicy sauce - I was finally able to catch up with my friends on both number of cabbages and level of spiciness.

    We had many cabbages and radishes to prepare, but we managed to finish everything, including cleaning, in a bit less than five hours. The kimchi prepared was divided among all of us, and I got my share of cabbage and radish kimchi to bring home and let my roommates in Seoul try it too.

    Soon it was time for dinner. Japchae (potato starch noodles with vegetables), beef soup, rice and delicious fresh kimchi (geotjeori) were our rewards for a long day of work. We had a cozy dinner and a nice chat while drinking beer. That was a perfect ending for an intense but interesting day. The sense of friendship and community, working all together on something, and sharing the results, is what kimjang is about in my opinion. I felt very lucky of having the chance to experience this thanks to my Korean friends, and I really felt at home, even though I was very far away from it.

    Night came soon, and after greeting some of my friends who went back to their home, it was time to get some sleep. I fell asleep almost immediately with a filled tummy and a smile on my face.






    한식이라 불리는 한국 음식은 세계적으로 비견할 만한 요리가 몇 안될 정도로 높은 문화적, 상징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식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 나라의 역사와 철학에 가장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요리 문화 중 하나입니다.               시식과 요리는 문화를 배우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한국의 경우 현지인과 함께 김치를 준비하는 것은 당신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경험 중 하나입니다. 김장은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인 김치를 대량으로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이 준비 과정은 친척, 친구, 이웃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으며 장 (한식 발효 양념)을 준비하는 것과 함께 한국 고유의 전통 요리입니다. 김치는 보통 여름과 가을에 수확한 신선한 야채를 추운 계절 내내 보존하기 위해 겨울 전에 준비합니다.

    김치를 담그는 전통은 20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는 농경 사회였고, 김장은 일을 분담하면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고 지식을 교환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1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농촌 집단주의에는 두레와 품앗이라는 두 가지 근본적인 표현이 있었는데 주로 쌀 농사, 밭일, 기타 활동을 위해 당국이 고용한 남성 농부와 관련된 것이 두레라면 품앗이는 여성과 아이들도 참여하는 소규모 활동이었고 그들이 하는 일에는 김치 준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김치가 한국 음식 문화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인식되면서 김장은 2013년 인류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지내는 3개월 동안 부산에 있는 친구의 집에서 김장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김장은 공동의 노력으로 야채 준비와 양념 만들기, 김치 보관에 이틀이 걸리기도 합니다. 오전 6시 30분경 일찍 일을 시작하였으니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시작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모든 야채 (무, 배추, 파, 당근)을 모아 잘 씻어 흙을 제거했습니다. 배추에서 갈색 잎과 오래된 잎을 떼어 냈지만 마지막에 배추를 감싸는 데 쓰기 위해 바깥쪽 녹색 잎 하나는 남겨 놓았습니다.   
    두 번째 단계로 과도한 수분을 제거하고 잎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배추와 무에 소금을 뿌리고 몇 시간 동안 저려 놓았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다른 야채들의 껍질을 벗기고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수다를 떨고 이야기를 나누며 모두가 함께 했던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 깍두기를 만들기 위해 무도 썰었습니다. 

    김장의 중요한 단계는 김치에 사용할 양념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양념은 물, 쌀가루, 고춧가루, 액젓, 다진 마늘, 다진 양파, 다진 생강을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양념은 새빨간 색으로 김치의 매운 맛에 입맛을 돋게 해줍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손으로 섞었지만 친구들은 제가 혼자 김장을 하게 되면 꼭 장갑을 끼라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금새 점심 시간이 되었고 밥과 국이 포함된 간단한 식사를 했습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신 후 친구들은 낮잠을 자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대게 낮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이 휴식 시간을 이용해 근처를 돌아 다녔습니다. 친구들은 부산 동래동의 주택가에 살았습니다. 이곳은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중 하나로 복천동 고분 등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지가 있습니다. 친구의 집은 언덕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멋진 전망을 기대하며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가며 화창한 날씨를 즐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거리는 조용했고 주변의 분위기는 매우 차분했습니다. 마치 모두가 낮잠을 자거나 도심에 일하러 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만난 건 길고양이 뿐이었습니다. 언덕 꼭대기에 올랐을 때, 언덕 아래 파란 지붕의 나지막한 집들이 보였고 도시의 다른 쪽에서는 고층 빌딩을 감상 할 수 있었습니다.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햇볕을 쬐며 몸을 녹였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김치를 담그기 위해 돌아갔습니다. 한 시간 후 돌아가니 친구들이 아직 자고 있어서 모두를 위해 커피를 준비하고 집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와 놀았습니다. 잠시 후, 친구들이 일어났고 우리는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순간이었습니다. 

    김치를 담그는 것은 시간도 걸리지만 공간도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다음으로 한 일은 거실에 필요한 공간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장을 하기 위해서는 작은 규모라도 충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거실에서 식탁과 의자를 치우고 바닥에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 전체에 비닐과 신문을 깔았습니다. 이제 김장의 다음 단계를 진행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배추 김치는 배추 잎 사이사이에 양념을 넉넉히 넣고 배추 겉잎으로 감싼 다음 깨끗한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합니다. 예전에는 옹기라는 도기 그릇에 김치를 넣고 개봉하기 전까지 땅 속에 묻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추운 겨울날에도 김치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 발효 과정에 이상적이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옹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 집의 발코니나 정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친구들이 양념을 바르는 것에 대해 좋은 팁을 알려줘서 천천히 시작하고 조금 더 “주의 깊게 접근한” 후 ? 친구들이 매운 양념을 더 바르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마침내 양념을 바르는 속도와 양념의 양에서 친구들을 따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담가야 할 배추와 무가 많았지만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고 마무리까지 하여 5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담근 김치는 각자 나누어 가졌고 저는 배추 김치와 깍두기를 집으로 가져와 룸메이트들에게도 시식을 하게 했습니다.

    곧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잡채 (야채가 들은 감자 전분 국수), 소고기 국, 쌀밥, 갓 담근 맛있는 김치 (겉저리)가 긴 하루를 보상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힘들지만 흥미로운 하루의 완벽한 마무리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김장은 함께 일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우정과 공동체 의식입니다. 한국 친구들 덕분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라고 느꼈고 집에서 아주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집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곧 밤이 되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한 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잔뜩 배가 부른 채로 미소를 지으며 거의 즉시 잠이 들었습니다.

  • 우수상

    나의 첫 번째 김장

    Vincenzo Acampora

  • [백일장]

    할머니 무지개 뒤에 황금 냄비가 있나요?

    작품내용

    비빔밥은 한국 문화와 사회 전반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양하게 변형 가능한 비빔밥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비빔밥은 한국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음식의 중요성을 믿고 실천하는 방식을 반영합니다. 오늘날 한류가 계속해서 전 세계로 뻗쳐 나가고 있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국 문화, 특히 요리는 음식을 맛보는 것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음식의 역사와 의미를 더 깊이 알아보고자 하는 저와 같은 외국인들의 관심을 계속 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안보 문제와 그에 따른 근본적인 결과로 인해 비빔밥은 집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음식물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벽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특히 어린이들이 보다 지속 가능한 음식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 동화책을 만들었습니다.
    작품내용 이 동화책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레시피 가이드에 언급된 흔한 재료들을 자세히 알아봅니다. 사회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 및 식량 안보 문제에 대한 캠페인으로써 어린이들의 관심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 가정에서 할머니의 역할이나 어린이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무지개와 같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친숙한 요소를 포함시켰습니다.

    무지개 뒤에 
    황금 냄비를 가질 수 있는 곳으로
    또 다른 모험을 데려가줘.


    논 위를
    걷고
    낱알이 몇 개나
    있는지 세어보자.


    잎이 많은 채소들이
    힘을 잃기 전에
    함께 정복하자.


    새싹이 
    나처럼 계속 자라는 
    세상에서 휴식을 취하자.


    잠깐만!
    벽이 없는
    방들에게도
    인사 좀 할게.


    봐봐!
    누군가 뒤에서 엿보고 있어.


    음매!
    음매!
    음매!


    집에 돌아갈 때
    얘를 데려갈 수 있을까?


    토끼야,
    가는 길에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좀 있을까?


    더 많은 곳을
    탐험할 수 있게
    너의 날아다니는 받침접시에 태워줘.


    멀리서 빨갛고 갈색인
    바다도 보고


    바다로 뛰어 들어
    물에서
    춤추는 해초를
    감상하자.


    아쉽지만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야.


    이제 함께한 이 여행의
    추억을 모두 
    모으자.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함께 섞어…


    할머니,
    무지개 뒤 
    어디에 
    황금 냄비가 있나요?


    사랑으로
    만들어진 위로가 되는 비빔밥 한 그릇


    모든 
    무지개 뒤에는
    황금 냄비가 항상
    있을 테니까.


    음식물 쓰레기
    금지!

  • 우수상

    할머니
    무지개 뒤에
    황금 냄비가 있나요?

    Noelle cubacub

  • [백일장]

    미나와 토미: 새로운 맛을 찾아서

    작품내용

    “미나와 토미 : 새로운 맛을 찾아서”는 한국에 이민 온 에콰도르 아이, 토미와, 토미에게 한국어와 미식 문화를 포함한 한국 문화의 일부분들을 가르쳐주는 토미의 가장 친한 친구인 미나의 이야기이다. 두 친구들은 다른 문화권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잘 어울립니다.

    토미를 소개합니다. 토미는 엄마 아빠와 함께 대한민국에 이민 온 에콰도르 아이에요. 토미는 수줍음이 많은 친구이지만 확신을 가지면 아무도 막을 수 없어요. 토미의 이름은 한국어로 토미 라고해요. 토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아이스크림 이에요. 토미의 가장 친한 친구는 미나에요. 토미는 구름 위를 나는 용이 된 것 같아 비행기 여행을 좋아해요. 그래서 토미는 많은 시간을 구름위에 있을 수 있어서 한국 행 비행을 정말 즐겼어요.

    미나를 소개합니다. 미나 이름은 이렇게 써요. 미나. 미나는 서울에 사는 8살 한국아이에요. 미나는 친절하고 모험심이 강하며 매우 쾌활하고 웃음소리가 매우 커요. 미나는 비 오는 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요. 미나는 친구들이 많지만, 가장 친한 친구는 토미에요. 미나는 누나고, 3살짜리 남동생 돌보는 것을 좋아해요.

    토미가 한국에 도착해 새로운 학교에 입학했을 때, 미나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새로운 전학생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미나는 새로운 친구의 문화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토미의 친구가 되었고, 다양한 모험을 통해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미나는 토미가 항상 같은 도시락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 초콜릿, 사과 그리고 요거트. 계절, 온도 그리고 기분과 관계없이 그의 도시락은 항상 같았어요.

    미나는 토미에게 왜 항상 같은 도시락을 싸오는지 물었어요. 그러자 토미는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것이 두려워서 이미 맛을 아는 음식을 먹는다고 했어요. 미나는 토미가 한국의 새로운 맛을 시도할 수 있도록 도시락을 나눠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토미는 항상 “고마워 미나야 하지만 내 도시락을 먹을게” 라고 했어요.

    미나는 토미가 새로운 맛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너무 맛있는 음식들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어요. 그래서 미나는 토미가 한국 음식을 맛볼 계획을 짜기 시작했어요.

    토요일 아침, 미나는 토미에게 걱정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으로 토미가 올 수 있는지 물었고 토미는 기꺼이 응했어요.

    몇시간이 지난 후, 토미와 미나는 숙제를 끝냈어요. 토미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순간 미나는 시간이 늦었으니 할머니에게 우리 둘을 위한 점심을 만들어 달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어요.

    토미는 그 초청을 거부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미나의 할머니는 항상 사랑으로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너무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토미는 마음속 깊은 곳은 불편했지만, 점심을 먹기로 했어요.

    토미가 식탁으로 다가갔을 때, 다양하고 겉으로 보기에도 엄청난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이 음식들은 토미가 한번도 맛보지 못한 것들이었어요.

    - 배추
    - 액젓
    - 향신료
    - 생강
    - 마늘
    - 소금
    - 설탕
    -
    - 고춧가루

    한국에서는 식사 때 김치와 밥을 함께 먹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이라고 미나는 알려줬어요. 토미가 김치를 먹을 때, 그 맛이 조금 강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밥과 함께 먹었을 때 토미의 마음에 쏙 들었어요.

    - 반죽
    - 고기
    - 양배추
    - 양파
    - 마늘
    - 소금
    - 두부
    - 참기름
    - 간장

    미나는 만두를 토미에게 건넸고, 토미는 만두가 매우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를 먹어보니, 너무 맛있었어요. 토미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기와 채소가 가득한 구름을 물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
    - 고기
    - 계란
    - 양파
    - 채소
    - 참깨
    - 참기름
    - 간장

    다음으로, 미나는 비빔밥을 건넸고, 토미는 비빔밥이 매우 화려하다고 생각했어요. 토미에게는 무지개 같았어요. 비빔밥 한입을 먹었을 때, 토미의 눈이 커졌어요.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이 생각났기 때문이에요. “이게 무슨 마법이지?” 라고 생각했어요.

    - 갈려진 얼음
    - 단팥
    - 연유
    - 민트 잎

    마지막으로 디저트를 가져왔는데, 빙수에요. 단팥소가 들어간 것이 전통적이지만, 미나는 딸기를 넣은 것을 좋아한다며, 두 종류를 맛보라고 가져왔어요. 두가지 맛 전부 맛보면서 완전히 비웠어요.

    식사가 끝나고, 토미는 배가 불러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가장 친한 친구 미나에게 고마워하며 매우 행복했어요. 토미는 엄청난 사랑을 받았어요 : 한국 음식 물론, 미나는 자신의 계획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에 대해 행복하고 자랑스러웠어요. 그리고 또한 토미에게 한국 음식과 관련된 새로운 단어들을 알려줬어요.

    이 날 이후로, 토미의 도시락은 이전과 같지 않았어요. 초콜릿, 요거트, 사과로만 가져오지 않았고 새로운 한국음식들을 시도하기 시작했어요(토미의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만두가 되었지만요.) 게다가 미나와 함께 도시락을 나눠 먹기 시작했어요. 둘 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 우수상

    미나와 토미:
    새로운 맛을 찾아서

    Diana Vasco

  • [백일장]

    김치

    작품내용

    호주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이 한국인 아버지로부터 김치를 배우게 되고 그 맛에 매료되어 한국에 찾아온다. 배추밭의 고장 귀네미 마을을 배경으로 다양한 김치 종류와 양념을 개발하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가다보면 단절되어 있던 아버지와의 사랑도 확인하게 된다. 다양한 양념과 재료만으로도 달라지는 김치 만드는 과정을 먹음직스럽고 볼거리 가득한 시나리오로 집필하고 싶었으나 글자수 제한으로 인해 수필형식으로 주인공의 서사만 표현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음식은 어떤 이야기를 담아 당신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나에게는 그 음식이 바로 김치이다.

    전 세계에서 김치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고 한다. 건강에 좋은 유산균이 가득하고 상큼하고 아삭하며 입맛을 돋구는 그 맛에 반하여 함께 하는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김치의 종류만 300가지가 넘는다고 하던데, 이 매력적인 음식에 대한 각자의 추억은 또 얼마나 다양할까? 

    이제 시작하는 이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며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김치에 대한 추억의 기록이다.

    내 이름은 테이슨 리. 한국 이름은 이태민이다. 지구 아랫마을 호주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호주하면 가장 먼저 코알라, 캥거루,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을 떠올리지만 나는 남호주 아들레이드 시골에 살고 있다.   

    25년전 호주로 여행을 오셨던 아버지는 호주인인 어머니를 만나 이곳에서 나를 낳으셨다. 두 분은 사이가 참 좋으시고, 나에게 많은 자유를 주시며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아마 내가 아버지 키와 비슷해져 갈 무렵이었던 것 같다. 가끔씩 호주의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멍하니 한참 보던 아버지의 뒷모습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그냥 하늘이 아름다워서 쳐다보는 모습이 아니었다. 말 할 수 없는 것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 했다. 

    사실 나의 정직한 속마음은 조금 두려웠다. 평범하고 나른한 그러나 평화로운 우리의 삶에 무언가 깊은 슬픔이 아주 깊은 곳에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한 시작은 의외로 아주 즐겁게 출발했다.

    평소 우리 가족이 즐겨먹는 음식은 그야말로 서양스타일이다. 버터를 듬뿍 녹인 프라이팬위에 두툼하게 썰린 베이컨과 방금 닭장에서 꺼내온 탱글탱글 신선한 계란, 그리고 오븐에서 꺼낸 갓 구운 홈메이드 빵으로 우리의 아침을 시작하곤 했다. 점심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저녁은 육질이 살아있는 스테이크를 양껏 즐길 수 있었다. 거기다가 어머니의 베스트 요리였던 매쉬포테이토 (으깬 감자요리)가 곁들어 지면 그야말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치게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편찮으신 외할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다른 주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께 가야했다. 할머니께서 도움이 필요하셨던 시간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오래 걸렸다. 그 사이 아버지와 나는 우리가 매일 해먹는 음식에 조금씩 질려가고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와 함께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마트의 야채코너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던 아버지는 호주에서는 차이니즈 캐비지라 불리는 배추를 2통이나 사시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태어나서 그런 야채는 먹어본 적이 없고, 도대체 아버지가 저 야채를 왜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야채로 요리를 하실 수나 있는지 몹시 걱정스러웠다. 아버지는 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저 미소 띤 얼굴로 다른 필요한 물건 몇 개를 사시고는 집으로 향하셨다. 나는 할 줄 아는 요리도 없었고 더 이상의 같은 음식은 먹고 싶지 않았기에 묵묵히 아버지의 장바구니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내가 처음 보는 듯한 모습으로 능숙하게 배추를 썰고 소금을 뿌리셨다. 그리고 이 야채가 한국에서 배추라고 불린다고 알려 주셨다. 아, 내 기억이 맞으면 아버지는 나에게 처음으로 먼저 한국에 대해 얘기를 꺼내셨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 아버지가 나고 자랐을 한국에 대해 물었을 때 아버지는 그저 '나중에..나중에..'란 말만 되풀이 하셨다. 그럼 이제 그 나중이 온 것인가? 나는 알 수 없는 설렘과 긴장감에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그 날 저녁 바로 먹을 줄 알았던 아버지의 배추요리는 저녁식탁에 오르지 않았다. 배추를 절이는 중이라고 하시는데 난 도대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저러다 음식을 버리는 건 아닌지 아버지는 왜 갑자기 이상한 요리를 하시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외출을 하고 돌아온 나는 부엌에서 맛있게 익힌 돼지고기를 썰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께서 어제 배추요리를 망치시고 고기요리를 새로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식탁에 나를 앉히신 아버지는 방금 썬 돼지고기와 함께 분명 어제소금에 절인 배추로 만든 붉은 색의 야채를 들고 오셨다. 그것이 내가 처음 본 김치였다. 아버지는 빨갛게 물들은 김치만큼 붉어진 눈으로 조용히 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강원도 태백시 귀네미 마을에서 자라셨다. 그곳은 초록빛 바다라 불리는 드넓은 배추밭이 아주 장관이라고 하셨다. 가을 햇살에 속이 꽉찬 배추가 해발 1100m가 넘는 곳에서 푸르게 자라 눈시린 파란하늘에 닿아 있다며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그 곳의 주인이 바로 나의 할아버지라는 얘기도 하셨다.   

    잠시 여행을 하기위해 호주에 온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 사랑에 빠지셨고, 눈이 파란 며느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완고한 할아버지의 고집과 어머니를 포기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고집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힘든 농사일이지만 남다른 보람이 있는 가업을 이어나가길 원하셨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뜻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신 것이었다.   

    나는 가끔씩 보였던 아버지의 슬픈 뒷모습의 이유를 발견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배추로 만든 '김치'를 돼지고기에 싸서 내 입에 넣어주셨을 때 난 결심했다. 내 입속에서 녹고있는 이 아삭하고 상큼한 사과 같은 맛의 김치의 본고장을 찾아 가야겠다고 말이다. 그 다음 할 수 있다면 내 아버지의 뒷모습에 걸쳐진 슬픔을 걷어내기 위한 일도 할 것임을...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일 먼저 나는 한국말을 할 수는 있었지만 읽고 쓰는 것은 능숙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주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댁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늘 그랬듯 나에게 미소 가득한 얼굴로 힘을 주었고, 나와 아버지를 꼭 안아주셨다. 우리 집은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한국에 가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시작 해야 했다.   

    드디어 한국으로 가는 모든 준비가 끝나고 가족과 식탁에 둘러앉았다. 이제 익숙하게 김치를 만드시는 아버지의 잘 익은 김치가 눈앞에 있다. 아버지는 그 위로 사진을 한 장 내미신다. 나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옷만 옛날 옷일 뿐 그 모습은 지금 그대로의 내 아버지와 똑같은 할아버지의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진 뒤에 적힌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여주시며 아마 이 곳에 계속 살고 계실 거라 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20년이 넘게 연락이 없었으니 할아버지도 이제 우리 아버지가 보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나의 존재를 아는지 궁금해서 아버지께 여쭈어 보니 내가 태어나고 찍은 사진을 한국 할아버지 집으로 보냈으나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사진을 받으셨다면 나의 존재를 알고 계시겠다 생각하니 하루라도 더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었다. 

    물론,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할아버지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무턱대고 찾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먼저 한국에 적응을 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로 할아버지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우습게도 한국의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는 한동안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공항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태어나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본 것도 처음이요. 이렇게 먼 곳을 온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시드니도 가본 적 없이 내가 태어난 남호주의 작은 시골에서 계속 자라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일단 첫 목적지인 서울로 갔다. 
      호주에서 준비해온 영어강사 자격증(TESOL)으로 서울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열심히 돈을 벌어 할아버지 드릴 멋진 선물도 사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국에 놀러 오셔서 우리 가족이 모두 다 함께 만날 모습을 상상하며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 힘든 줄도 몰랐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추억도 쌓고 할아버지를 만날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던 중 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은행이라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세금환급이 있다며 나에 대한 여러 가지를 점을 물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모든 것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보이스피싱 (전기통신금융사기) 이었던 것이다. 

    급히 은행계좌를 확인해 봤지만 내가 그동안 모아놓은 통장의 돈은 0원이 되어 있었다.  심장을 돌고있는 피가 멈춘 듯 손가락 끝이 차가워지고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의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어 드리려는 나의 모든 꿈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너무 억울하고 슬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나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며 방안에 누워있었다. 누워있는 방 창으로  가을로 넘어가는 서울 하늘이 유난히 파랗게 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고 한 번도 뵙지못한 할아버지의 얼굴도 떠올랐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는 생각에 배가 고파졌다. 어지러운 마음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온 거리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정말로 많았지만 일단 속을 진정 시켜 줄 죽이 먹고 싶어졌다. 눈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간 죽 전문 집은 아삭한 김치와 함께 고소한 죽으로 나에게 힘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화도 시킬 겸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집 근처 한바퀴를 천천히 도는데  마침 김치 전문점 가게가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수십 가지의 김치가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김치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여러가지 질문을 주인아주머니께 여쭈었다. 

    특히 물에 담가진 하얀색의 배추도 김치인지 물었는데 백김치라는 것인데 한 번 맛을 보라며 건네 주셨다. 사이다처럼 톡쏘는 그 맛이 시원하고 청량하기도 했다. 답답한 속이 뻥뚤린 듯 개운했다. 태어나 처음 당한 사기의 씁쓸한 인생의 맛이 조금이나마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또 이것 저것 김치에 대해 물으며 김치가 낼 수 있는 많은 맛과 재료와 양념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푸근한 인상의 주인아주머니는 젊은 사람이 김치에 어찌 그리 관심이 많냐며 흥미로워 하셨고 신선하고 맛있는 김치의 가장 큰 비결은 고향인 귀네미 마을에서 배추를 산지직송으로 가져오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해발 1000m가 넘은 높은 곳에 축구 운동장 150배나 되는 드넓은 그곳이 모두 푸르른 배추로 덮여있다며 나고 자란 귀네미 마을의 풍경을 자랑하셨다. 

    이야기만 들어도 감탄이 나왔다. 예전에 유투브로 언뜻 본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실제로 찾아가 눈앞에서 그 생생한 현장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간략히 내 사정을 들으신 아주머니는 잠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시다가 다음 주에 고향에 가시는데 친구분이 하는 싸게 하는 숙박업소에 지내면 된다고 같이 가자고 하셨다. 

      고속 터미널에서 만나 달리는 차안에서 김치의 양념과 재료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김치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말씀드리자 아주머니 가게에서 한 달에 한번씩 김치를 만드는 '김치 특강반'이 있다는 걸 알려 주셨다. 다음 달 '김치 특강반'은 내가 제일 먼저 예약이라며 최고로 잘 가르쳐 주시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마침 도착한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점심식사를 나누다가 가방에서 아버지가 주신 할아버지의 사진을 아주머니께 보여드렸다. 아주머니는 사진을 유심히 들여 보다가 깜짝 놀라시며 사진 속의 주인공은 아주머니의 아버지라며 이내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아주머니의 얼굴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를 처음 본 날도 혹시나 해서 물어 보고 싶었지만 실례가 될 수 있어 묻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자꾸 25년 전 떠난 오빠 얼굴이 어른거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귀네미 마을 여행을 제안하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 아버지와는 남매이시고 나에게는 고모가 되시는 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우리는 정말 가족임이 틀림없다. 한편으론 왜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까? 부모는 자녀가 이해할 수 없는 가슴의 무게를 달고 산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달리는 창밖의 풍경은 내가 살던 호주의 풍경과 아주 달랐다. 그곳은 건조하고 끝없이 펼쳐진 평지에 한가로이 소떼나 양떼가 풀을 뜯어먹고 있었지만 이곳은 굽이굽이 산등성이로 푸르른 나무들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촉촉한 대지의 기운을 뿜어내며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터미널에 도착한 고모는 어딘가로 전화를 마치시고 나에게 다가와 함께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자고 하셨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실 것인가? 아버지가 할아버지와의 연을 끊고 떠났던 이곳에 서 있는 나에게 말이다. 고모의 지인이 차를 가지고 왔다. 어느덧 차는 '귀네미 마을'이라는 표지판을 지나 안개 속에 둘려 쌓여있는 어느 산등성이로 나를 데리고 왔다. 앞을 알 수 없는 지금의 내 상황처럼 이 곳은 어디인가?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 멀리 느티나무 아래 한 남자가 서 있다. 하늘을 고개 들어 바라보는 슬픈 뒷모습이 나의 아버지와 참 똑같다. 맞다. 나는 이 슬픔을 깨고 싶었다. 호주와 한국의 물리적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이어져 있는 이 긴 슬픔의 고리를 자르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김치가 나에게 이곳으로 올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했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진심을 다해 '할아버지!'라고 소리쳤다.   

    그는 나에게 달려오고 있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몸이 굳은 체 서 있는 나에게 말이다.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나의 목을 감싸 안고 우셨다. 마음에서 자꾸만  울컥한 것이 올라온다. 우리는 사실 이렇게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었는데 왜 서로 먼저 표현하지 않았던 것일까?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나의 손을 꼭 잡고 계셨다. 기분좋게 시원한 바람이 부드럽게 내 이마를 지나간다. 서서히 안개가 사라지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비춘다. 그 아래로 풍력발전 바람개비가 동화 속처럼 현실인 듯 꿈인듯 빙빙 돌고있다. 그 아래로 푸른빛의 속이 꽉 찬 배추들이 만개한 꽃송이처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배추향기를 내뿜으며 빛나고 있다.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댁으로 간 나는 아버지가 호주에서 해 주시던 돼지고기 수육에 배추김치를 먹으며 결심을 했다. 이곳에서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추농사를 지어야 겠다고 말이다. 할아버지는 다시 눈물을 흘리시며 기뻐하셨고 정말 고맙다고 하셨다.   

    자, 이제 한 달 후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국에 방문하실 것이다. 해야할 말이 차고 넘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내가 직접 만든 김치를 두 분에게 맛보여 드리기 위해 '김치 특강반'의 노하우로 맹연습을 시작한다.    

    그 다음 나만의 새로운 김치양념을 개발해서 맛있는 김치를 널리널리 알릴 것이다.  

  • 장려상

    김치

    박성연

  • [백일장]

    한국살이 3개월, 나를 채운 정(情)의 맛

    작품내용

    첫 번째 부분은 제가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먹었던 비빔밥에 관한 이야기와 가게 점장님과 나누었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서울의 유명한 식료품 가게에서 만난 이색적인 음식과 따뜻한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我初来韩国,不过三月有余。这细细碎碎,平且又带点枯燥的过往每日,数过来竟亦是有许多令人心头一暖的瞬间。若说韩国的‘情’从何可见,我想,便是韩国每一个平凡的饮食店,店中每一位忙碌的店长,店长亲手做出的,冒着腾腾热气的饭食罢了。


    (1)
    犹记赴韩未满一月的某个夜。我花费了不少功夫整顿好了自己的行李,再到超市豪逛了一番。从超市携着大包小包出来时,已是披星戴月的时刻了。疲倦漫步在陌生街头之上,望着挂于房宇之间,参差不齐的店名招牌,竟是没几个单词是我所认识的。
    “咕噜噜——咕噜噜——”
    我虽情怯,但我的肚子倒是一点也没有初来乍到的怯意,竟是大声地呼喊起来。无奈与堂皇之中,我几近于狼狈地挑了个唯一看得到的饮食店——비빔밥집,朝着那点大步迈去。在中国时,常吃拌饭,因而对这道菜肴多了几分熟悉,少了几分拘谨。
    我满怀忐忑向店长喊到:“저기요! 산채 비빔밥 하나 주세요.”只见店长阿姨利落答应,转身又埋头苦干起来。
    做完这些后,我心中大石几近于放下之际,又再次悬起。
    店长为我端上了冒着腾腾烟气,色泽满盈的山菜拌饭,又拿来一大罐的拌酱,而后相继摆下了辛奇,腌萝卜,豆芽,青椒以及白豆腐等诸类小菜,好是一桌丰富,我一个人竟是吃出了满汉全席的气势。只见店长笑意盈盈,声色温柔且体贴向我说道:“맛있게 드세요.”
    可我拿着勺筷,一时之间竟是不知该何从下手。因为在中国时,我吃拌饭从来都是马虎应对,从不加酱,亦不拌开,只图其味,不求过程,可谓是从未吃到这道菜的精髓之处。我尴尬地四处张望,只盼店长阿姨不要注意我这吃得如此没有章法的人,可我一转头,便直直的和店长的眼神对上了,尴尬霎时之间徒增了万分有余!
    过了片刻,店长阿姨端来一碗红油满满的热汤,亲切道:“이것은 서비스예요. 한번 먹어 보세요!”,而后又见我那胡乱搅拌的拌饭,温声细语问道:”도와 드릴까요?”
    不等我说,直接就上起手来,拿起我的饭勺舀起满满一勺酱料,而后再顺着碗壁顺时针绕了一圈,逆时针也绕了一圈,把底下铺着的饭满满掀起,再左右推动碗里的山菜充分混合,不过眨眼之间,竟是让一份佳肴的灵魂得以全然释放。
    接而店长阿姨坐于我身边,亲切地问,是不是很少吃拌饭?
    我答道,从前在中国,没花心思去细吃。
    只听她爽朗一笑,作惊讶状,夸道,真是被你骗到了!你韩语说的这么好,还以为你是个地道韩国人!
    而后店长又细数了韩国人家常会做的韩国菜肴,再热情似火地向我推荐了不少在韩国必然不可错过的各类美食,最后还仔细叮嘱了我,往后吃拌饭应当如何搅拌才够入味。
    我走出店门之后,心中真是感概万分。
    一位萍水相逢的旅人,竟是得到如此宝贵的珍重,一顿看似简单而平常的晚饭,却融了这么厚厚的情谊,真是花千金万金亦难买!


    (2)
    再到后来,来韩已满三月,日常生活上也算过的游刃有余,再也没了初来乍到那份生涩和紧张。
    某一日,与好友奔走与大名鼎鼎的广藏市场(광장시장),我们急切地寻找着一家隐于市集之间的有名美食店。晕头转向地在市场内走了一圈又一圈,竟是毫无头绪!最后,只得向前询问市场内的引导员。
    引导员热情万分,怕是一言二语讲不清方向,多番提起要带我们直接去寻找那家店,我们怕耽搁了他,虽然口头上委婉拒绝了,但心头上还是热乎乎的!
    经过九曲十八弯,终于是柳暗花明又一村!我们在一片买衣物的摊位之中找到那家小店,真是大隐于市!虽然周围服饰生意暗淡,但这家店的客人可谓是络绎不绝。
    我们哈着寒气,在冷冽的风中排上了许久的队,才捧上了热乎乎的鱼饼和鱼饼汤,再加上一份独特的金枪鱼紫菜包饭。
    为何说这份金枪鱼拌饭独特呢?奇就奇在别人是紫菜包着饭,而它确实饭团裹着紫菜!店长先是在砧板之上把热乎的饭团满满平铺,接而用手狠压,把饭团压至扁平结实,接而再在饭团之上放上几篇紫菜,紫菜之上放入香浓的芝士条和韩国不可或缺的小菜——腌萝卜。
    接着店长以迅雷不及掩耳之势头把饭团反裹起来,再用利刀切成一块块小小饭团,最后再饭团上铺一层满满的金枪鱼。
    果真是奇特!
    我与好友寻了角落,蜗坐起来。拿起鱼饼往鱼饼汤之中一渗,迅速拿起塞入口中,再配上甜甜的金枪鱼饭团,一咸一甜,恰到好处,当真是人生某瞬一大幸事!
    而后,我们的座位陆续被后来的客人填满。大多客人都是齐家团聚,在饭桌之上嬉笑打趣,斗嘴闲聊。尽管外面撒着晚秋的冷雨,刮着冷冽的风,他们这一家团聚的画面确实驱走了所有的寒,让我们心头多了几分暖意,也多了几分乡愁。
    要细说韩国的‘情’,怕是三言两语说不完。但若说何处能见韩国的‘情’,万物都莫过于韩食。无论是我情怯之时遇上的那一碗山菜拌饭,还是萧瑟秋日之下增了几分温暖与乡愁的金枪鱼紫菜包饭,它们决不止步于简单的食材,而是远远地超出了食物的界限,成为做菜人和食菜人的情感媒介。




    제가 한국 생활을 시작한 지 약 3개월이 흘렀습니다. 이 소소하고 단조롭기도 했던 시간을 되짚어 보면 마음 따뜻했던 순간도 가득 들어있습니다. 한국의 ‘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저는 한국의 평범한 식당이 떠오릅니다. 식당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 그분들이 뜨거운 열기를 참아가며 만들어 주신 밥 말입니다. 


    (1)

    한국에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밤이었습니다. 저는 짐 정리에 열중하는 중이었고, 그 때문에 마트에 또다시 다녀와야 했습니다. 마트에서 크고 작은 보따리를 들고 나올 때는 이미 사방에 어둠이 내려 있었습니다. 피곤에 찌든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딛던 낯선 길 위, 건물들 사이에 다닥다닥 붙은 음식점 간판이 보였지만 제가 알아볼 수 있는 간판은 많지 않았습니다. 

    ‘꼬르륵, 꼬르륵…….’ 저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제 위장은 저와 생각이 다른 듯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우렁차게 울었습니다. 저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었던 ‘비빔밥’ 간판을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서도 비빔밥을 자주 먹어보아 다른 음식에 비해 비교적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긴장된 마음을 안고 외쳤습니다.  “저기요! 산채비빔밥 하나 주세요.” 아주머니 한 분이 빠르게 제 주문에 답하고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잠시 홀가분해진 제 마음은 곧 다시 무거워집니다. 뜨거운 연기를 헤치고 윤기 자르르한 산채비빔밥을 들고 오신 아주머니는 비빔장과 함께 김치, 깍두기, 콩나물, 고추, 두부 등 다양한 반찬을 잇달아 놓아주셨습니다. 풍성해진 식탁이 마치 저만을 위한 ‘만한전석(청나라 궁중의 호화 연회 양식_역주)’을 보는 듯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주머니는 상냥한 웃음으로 친절하게 인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수저를 들고 보니, 대체 어떻게 먹어야 할지 순간 멍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중국에서 비빔밥을 먹을 때는 고추장을 넣어본 적도 밥을 비벼본 적도 없었고, 맛보기에 급급해 먹는 법을 눈여겨보지 않았으니 진짜 비빔밥을 먹어보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난감함에 두리번거리면서도 먹을 줄도 모르는 제 모습이 아주머니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쳐버린 순간, 제 마음속 난감함은 더욱 크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것은 서비스예요. 한번 먹어 보세요!” 잠시 후 매콤해 보이는 찌개를 들고 오신 아주머니는 제가 엉망으로 비벼 둔 비빔밥을 보시고는 따뜻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도와드릴까요?”

    제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제 숟가락으로 고추장을 듬뿍 떠 넣고 시계 방향으로 한번, 다시 반대로 한번 비비고는 바닥에 깔린 밥은 위 쪽으로 각종 나물은 오른쪽 왼쪽 이리저리 밀며 섞었습니다.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엉망진창이었던 제 비빔밥이 환골탈태한 느낌이었습니다. 

    제 곁에 앉아 평소 비빔밥을 잘 먹지 않느냐고 살갑게 묻는 아주머니에게 저는 중국에서는 되는대로 대강 먹었다고 답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쾌활한 웃음과 함께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한국어를 너무 잘해서 한국인인 줄로 깜빡 속았다고 호들갑스럽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한국 가정에서 자주 먹는 음식 소개와 함께 한국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을 친절하게 추천해 주셨고,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식당 문을 나설 때, 제 마음속에 뜨거운 감정이 일었습니다.  스쳐지나는 사람에게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고, 소박하고 평범한 저녁 한 끼에서 이리 깊은 정을 느낄 수 있다니! 이날의 식사는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2)

    한국 생활 2개월 차를 지나니 처음과 같은 어색함이나 긴장감 없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이름도 유명한 ‘광장시장’에 간 친구와 저는 시장 점포들 사이에 위치한 맛집 찾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거기가 거기인 것 같은 시장 안에서 돌고 또 돌았지만 도저히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결국 시장 내 안내하시는 분께 문의하기로 했습니다.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저희가 사양하기는 하였지만, 말로만 알려주어서는 길을 찾지 못할까 걱정하며 몇 번이나 식당에 데려다주겠다고 한 안내인 덕분에 저희 마음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지요! 저희는 옷을 파는 노점 사이에서 정말 꼭꼭 숨어있던 그 식당을 찾았습니다! 주변 상권은 많이 죽었지만, 이 식당만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을 견디며 긴 줄을 선 끝에 드디어 어묵과 어묵탕, 그리고 특별한 참치김밥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왜 특별한 참치김밥일까요? 그건 바로 김으로 싼 다른 김밥과 다르게 밥으로 김을 쌌다는 점 때문입니다! 만드는 모습을 보니 아주머니가 뜨거운 밥 뭉치를 도마 위에 편평하게 깔고 손으로 눌러 엉겨 붙게 만든 후, 그 위에 김을 올리고 치즈와 함께 김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료인 단무지를 놓습니다. 

      이어서 재빠른 손놀림으로 밥을 뒤집어 말아 칼로 작게 썰어준 뒤 그 위에 참치를 가득 얹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저와 친구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묵탕에 어묵을 적셔서 한 입 베어 물고, 달콤한 참치김밥을 곁들이니 ‘단짠’의 조화가 어우러지면서 정말 행복한 순간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쉬지 않고 밀려들었습니다. 그 대부분은 왁자지껄한 가족 단위 손님들이었습니다. 가족끼리 단란한 모습에 늦가을 비와 함께 불어오던 차가운 바람도 물러가는 듯했고, 친구와 제 마음에도 그 온기와 함께 집을 향한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한국의 ‘정’이라는 단어를 한두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을 찾으라면 단연 ‘한식’이 될 것입니다. 긴장감 속에 먹었던 산채비빔밥도, 스산한 가을날 집 생각에 온기를 더해준 참치김밥도 모두 소박한 음식이었지만, 단순한 음식의 경계를 넘어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 모두의 마음속 ‘정’을 이어주는 끈이었습니다.  

  • 장려상

    한국살이 3개월,
    나를 채운
    정(情)의 맛

    LIU XINLAN

  • [백일장]

    한식일기

    작품내용

    이 글은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새로운 음식과 다양한 재료, 먹는 즐거움을 소개하는 2021년 초 한국에 온 한 외국인 학생의 일기입니다.

    2021년 02월 29일 오전 9시45분

    한국에서의 격리 첫 날이다. 나는 어제 밤 10시에 격리시설로 지정된 한 대학의 호스텔에 도착했다. 완전 죽은 사람처럼 잠을 잤다. 시차가 장난이 아니다. 여기서 14일동안 안정이 필요하니 하루 세 끼 박스에 담긴 음식을 먹는다. 그래 좋아! 아침밥은 더할 나위 없이 지루하다. 잼이 발려져 있는 차가운 베이글에 이 세상의 모든 녹색 것들이 담겨 있는 샐러드. 나는 견과류를 챙겨 먹듯이 건강하게 먹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오전 7시30분

    "행복의 75%는 음식에서 나오니 음식에 돈을 쓰는 것은 행복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점심과 저녁은 아주 좋다! 그리고 그 런치박스는 ‘도시락’이라고 불리며 안에는 자가 가열이 가능한 수분활성 산화칼슘 주머니가 들어있다. 흥미로운 기술발전!!! 오늘 플라스틱 상자에 두가지 한국 음식이 있었는데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젓가락 사용법에 대한 유투브를 보았고 조금 도움이 되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너무 배고파서 젓가락을 포기했다. 두부가 들어간 심플한 수프는 훌륭하다! 밥과 정말 잘 어울린다.


    2021년 3월 1일 오전 8시

    작년 12월 나를 진단해준 주치의에 따르면, 나는 섭식 장애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글을 쓰라고 제안했다. 이게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원래 음식을 좋아했지만 왠지 변했다. 지금은 충분히 먹지 못한다. 식욕을 되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효과가 있는지 보자! 이 새로운 나라와 나의 새로운 삶에서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화이팅!!


    2021 3월 3일 저녁 9시35분

    여기는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다. 나는 이 젓가락 게임을 연습하고 있지만 절대 쉽지 않다!! 나는 모든 커틀러리 중에서 2개의 스틱이 어떻게 이 전체를 이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사용하기 너무 쉽지 않다. 이건 나중에 사용법을 잊어버릴 경우를 대비해서 직접 만든 튜토리얼이다.

    1단계
    이렇게 두개를 같이 잡는다. 위쪽으로 좀 더 가까이 붙여 잡는다.

    2단계
    이렇게 잡고 엄지손가락과 검지 끝으로 젓가락1을 움직인다. 젓가락2는 움직여선 안 된다. 포도알이나 쌀알 같은 작은 것들을 집으려고 노력해라.

    사랑으로 음식을 대해라. 젓가락 사이로 음식을 짓누르려 하지마라.  이건 힘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음식을 살살 집어야 한다.  사랑을 가지고.


    2021년 3월 5일 저녁 8시30분

    나는 김치가 너무 좋다. 나는 김치에 대해 일련의 조사를 해왔고 그것의 역사 또한 흥미롭다. 그래서 격리기간 중 5일동안 세가지 종류의 김치를 먹었다.  1. 배추김치 ? 고전적, 최고. 2. 파김치 ? 흰쌀밥과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다. 3. 깍두기 ? 내 입맛에 너무 강함. 김치는 겨울에 신선한 채소를 접할 수 없기 때문에 선조들이 채소를 소금에 절인 것에서 유래했는데, 그들은 채소를 다른 방식으로 보존함으로써 영양 균형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아찌에 각종 양념과 양념이 더해지면서 김치의 토대가 형성되었다. 김치는 맛과 영양을 유지하면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지역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진화했다. 여기에는 한국인의 혼과 삶이 담겨 있다.
    나는 격리시설에서 나온 다음 김치를 많이 만들 거다.  배추김치가 가장 최고다!! 맛있는 음식이 그 뒤에 숨겨진 모든 이야기에 감탄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다고 생각하지 않아?


    2021년 4월 4일 오전 8시

    날은 춥고 배는 항상 고프다. 나는 이것을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 입맛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찾은 것 같다. 처음엔 이름을 몰랐는데 정말 굉장해 보였다. 그건 당면과 많은 야채로 만들어졌다. 버섯도 있었지!!! 그리고 그 위에는 참깨도 같이. 소고기 그리고 계란 후라이와 함께 나왔다. 참기름 냄새가 나고 정말 멋져 보인다! 그래서 이 요리의 이름은 …. 드럼을 울려줘!!!!! 그건 바로 잡채 또는 찹채라고 불린다. 나의 첫 번째 감은 모두 맞았고 이것은 감자전분으로 만든 면으로 만들어진다. 그 모든 색깔들로 고급스러워 보인다. 나는 그 맛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양한 텍스처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궁극의 편안한 음식. 게다가 많은 야채가 들어 있어 건강에도 좋다. 기회가 되면 꼭 그 요리를 먹어봐야 한다. 나중에 나한 테 고맙다고 해줘.


    2021년 3월 6일 오전 10시30분

    오늘 아침 식사는 훌륭했다. 삼각김밥 2조각을 먹었다.  참 수학적으로 들리지? 이건 아주 편리한 식사다. 내 김밥은 돼지고기로 차 있다. 하나는 탕수육이고 다른 하나는 돼지고기에 김치를 섞은 것이다. 간단하면서도 맛있다. 김밥에 ‘김’은 해초이고 ‘밥’은 지은밥을 말한다. 이름으로 이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다 말해준다!! 김, 말린 김. 김밥을 쌀 용도로 쓰거나 잘게 부수어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다 (그런 식으로도 너무 좋다). 아이들은 이것을 간식으로 먹는다.  김은 한국에서만 먹는 것이 아니다. 김 빵을 만드는 웨일즈, 베이컨과 함께 먹는 아일랜드, 디저트를 만드는 필리핀 등 어디에서나 먹는다. 세계의 해변을 여행하다 보면 몇 번이고 만날 수 있는 음식임에 틀림없다. 해조류는 수퍼푸드 그룹에 속하며 건강에 많은 이점이 있다. 따라서 어떤 음식을 선택하든 건강에 좋다.
    2021년 3월 7일 저녁 9시 이곳에 온 이후로 콩으로 만든 만은 제품을 접했다. 그래서 한국의 콩 제품에 대해 조금 찾아봤다. 콩을 뤠귐으로 사용하고 두유 (너무 맛있어서 한 번만 마셔도 중독됨)를 섭취하는 것 외에도 여러 식품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우리 지역의 코코넛과 놀라운 유사성). 콩은 싹이 튼 콩, 기름, 우유, 두부 (여기에도 다양한 두부가 있다), 간장(여기에도 굉장히 다양한 간장이 있다)의 형태로 제공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발효 된장으로 이곳 고유의 된장이다. 콩은 조미료로 사용하거나 첨가제와 함께 영양 공급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여러 콩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콩을 삶는 것부터 시작된다. 조리된 발효 콩을 반찬 (끈적한 콩으로 조미한 것)으로 사용하거나, 덩어리로 가공한 후 매달아 통기 및 발효시킨 후 발효 과정을 더 진행한다.  그 블록을 ‘메주’ 라고 한다. 그래서 메주는 많은 대두 발효 제품의 기반이 된다. 메주의 쪼개진 덩어리에 소금물을 넣어 숙성시켜 간장을 얻으면 간장 (숙성된 간장)과 된장이 된다.

    숙성 과정은 와인처럼 소스와 된장에 가치를 더한다. 그것은 숙성이 더 많이 될수록 더 비싸진다. 고추장은 주로 콩과 매운 고춧가루, 소량의 쌀 곡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매운 음식을 먹는 한국만의 독특한 음식이다.


    2021년 3월 15일 저녁 11:30분

    오늘 드디어 자가격리 완료!! 야아!! 축하하는 날이다!! 14일 만에 다시 살아 있는 사회에 접속!!! 교수님께서 내가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하기 위해 오셨다. 교수님은 나에게 대학 주변을 둘러보고 내 짐을 호스텔로 옮기는 것을 도왔 주셨다. 나에게 실험실을 보여주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점심에 나를 데려가셨다. 처음으로 실제 식당에서 진짜 한국 음식을 맛보는 것에 너무 설렜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았다. 반찬들이 테이블 전체를 채웠다. 교수님은 반찬의 수가 식당의 품격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밑반찬들이 놓여 있었다. 김치부터 시작해서 파, 로컬 반찬. 무, 된장찌개, 멸치, 감자와 당근, 계란말이...목록은 계속된다. 나는 다음에 이 모든 반찬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젓가락으로 연습한 것 치고는 나는 제대로 젓가락을 잡지 못했다!! 도시락과 함께 주는 젓가락은 나무로 되어있지만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젓가락은 스테인레스로 되어있다. 미끄러지지 않고 함께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나는 내 재능에 대해 너무 확신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서 교수님이 포크를 달라고 하셨다…. 내 말을 기록해, 나도 언젠가는 젓가락 프로가 될 거야. (연습을 위해 금속 젓가락을 구입) 나는 식사 내내 교수님의 지시를 따르고 그와 같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프로이기도 하고 음식 애호가이기도 하다). 밥은 흙 냄비에 제공되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밥을 숟가락으로 금속 그릇에 퍼낸다. 그리고 냄비에 뜨거운 물 (주전자 제공)을 넣어 냄비에 눌어붙은 누른밥을 풀어준다. (그릇 세척용도로 알았는데 점심을 먹고 난 후 우리는 누른밥 수프같은 것을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그리고 식탁위에 초록 야채로 가득한 바구니는 확실히 가치가 있다. 고기가 정말 풍부한 음식이기 때문에 섬유질(채소) 부분도 신경을 쓴 것이다. 채소 바구니에는 2가지 종류의 상추가 들어 있다. 갈색 윤곽선이 있는 다른 하나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종류다. 그리고 민트 종류의 잎과, 이상한 종류의 잎도 있다. 다음에 나는 이것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정통 레스토랑 경험은 정말 놀라웠다. 잠시 후 내 다리에 쥐가 났다 (바닥에 앉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 대단한 음식.


    2021년 3월 17일 오전 9시

    새로운 삶에 정착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다. 나는 호스텔 방에 모든 것을 정리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난 이걸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거야. 호스텔 레스토랑 음식은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다. 아침 식사 시간은 오전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이고 (데체 누가 그 시간에 일어난다는 말인가!!! 아침밥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점심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그리고 저녁 식사는 오후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제공된다.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 그들은 잘 먹고 제시간에 먹는다. 너무 늦기 전에 저녁을 먹는 것이 좋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지켜 본적이 없다 (공식적으로 올빼미다. 7시보다 일찍 일어난 적도 없고 12시보다 일찍 잔 적도 없다.) 그래서 그 음식은 많은 이모들과 삼촌들이 요리한다. 나는 그분들이 음식점을 가득 채우는 것을 봤다. 그래서 모든 호스텔 인파가 식당 앞에 줄을 섰고, 식권으로 입장하기 위해서는 학번을 입력하고 손목을 스캔해야 한다. 식사는 모두 뷔페식이고 메뉴에는 항상 우리 유학생들을 위한 양식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알아챈 것은 한국 학생들 말고는 그 파스타나 스파게티를 먹는 유학생이 없다는 거다. 식사는 편리하다. 맛은 좋지만, 최근에 먹었던 음식만큼은 아니다. 칸막이가 있는 금속 접시와 밥과 국을 담을 작은 그릇은 입구 근처에서 가져올 수 있다. 수저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개인 것을 가져온다.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한다. 메뉴는 하루 전날 학교 앱에 게시돼 있어 기숙사 식당에서 식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밥은 식사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매일 흰 쌀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라색 쌀밥, 콩밥, 분홍색 쌀밥으로 바뀐다 (콩 종류인 것 같지만 이름은 모르겠다. 나 여기 처음 왔으니까). 항상 어떤 종류의 수프가 있다. 두부랑 파채랑 콩나물이랑 이것저것 많이 넣어서. 고기는 항상 제공된다. 볶음이나 찌개 같은 것으로. 반찬은 한국 요리에서 필수다. 그리고 만약 김치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레스토랑에서 나와야 한다 왜냐면 그건 뭔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3월 20일 오후 8시

    시간이 좀 남았는데,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한국 반찬에 대해 설명하겠다. 한국의 채소 반찬은 대부분 비건이다! 그것은 한국 식탁(밥상)에 주로 추가되는 음식이다. 대부분의 갓 만든 것은 제철 채소이고, 일년 내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절임 채소들이 있다. 콩나물 반찬은 지금까지 배추김치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그건 간단히 데친 콩나물에 양념을 넣은 무침이다. 간장이나 고춧가루로 간을 하여 콩 본연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매운 오이 샐러드는 우리 기숙사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찬이다. 한국 오이는 색이 옅고 얇으며 껍질이 얇고 울퉁불퉁하다. 씨가 많지 않고 꽤 아삭아삭하며 맛있다. 오이를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 마늘, 대파를 넉넉히 넣는다. 향과 맛이 좋은 참기름까지 추가하여. 가지찜은 그냥 먹어도 맛있다. 여름이 다가오고 더운 날씨와 함께 가지가 잘 자라기 때문에, 이런 채소가 막 나오기 시작한다. 이 요리를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은 가지를 통째로 찌고 잘게 찢는 것이다. 소금, 후추, 고춧가루, 마늘, 참기름, 참깨로 양념이 완성되었는데 짐작한대로…. 간장 소스

    데친 시금치는 다양한 색깔의 반찬 세계에 녹색이 더해진 음식이다. 이것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다른 녹색 채소들이 있다. 어린 케일, 물냉이, 스노피 팁처럼... 그 채소들은 데쳐서 일반적인 양념이 더해진다.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고추장 양념이다. 매콤한 맛으로 밥과 잘 어울린다. 우리 숙소 식당에도 매운 무 샐러드 혹은 무생채가 자주 나온다. 그것은 만들기 다소 쉬운 샐러드이다. 한국의 무는 달고, 수분이 많고, 아삭아삭하다. 단단하고 아삭한 식감에 약간 달콤하고 후추맛이 나는 백무의 품종이다. 큰 무는 얇게 썰어 소금에 절여 부드럽게 만든다. 그리고 나서 헹군 다음 양념을 하는데 조미료에 차이가 있다. 고추, 빨간 고추, 참깨를 포함한 일반적인 양념들이 더해진다. 참기름 대신 간장 대신 액 젓과 설탕을 조금 넣어 새콤달콤한 맛을 낸다. 이야기할 반찬이 더 많다. 버전도 여러가지이다. 나는 남아시아 사람이기 때문에 테이블 위에 놓인 많은 카레에 익숙하지만, 음식을 먹을 때 무지개 색깔을 보는 것이 정말 흥미롭다. 영양 밸런스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다양한 색상의 섭취가 식이 밸런스를 충족시키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다채로움은 모두에게 윈-윈이다.


    2021년 3월 25일 저녁 9시

    치킨과 맥주는 소주와 맥주 다음으로 인기 있는 조합이다. 그래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모여서 치맥을 즐긴다. 그건 치킨의 ‘치’와 맥주의 ‘맥’을 조합한 줄임 버전으로 이렇게 불린다. 여기는 거의 모든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시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어렵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다른 음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우리는 금요일인 오늘 연구실 모임을 가졌고 우리의 교수님은 축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를 위해 많은 음식을 주문했다. 우리는 축하하는데 꼭 이유가 필요 없다 :)

    한국에서는 음식 주문과 배달 서비스가 꽤 유명하다. 다들 너무 바빠서 직장인들 대부분이 식당 음식에 의존하는데 식당 음식은 대부분 저렴하고 매우 편리하다 (그리고 그들은 배달에 대해 매우 진지한데 왜냐면 결코 늦는 일이 없이 제시간 또는 일찍 배달되기 때문이다). 닭고기가 특별히 맛있다. 한국에서 치킨이란 단연코 수준이 높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먹어봤던 치킨 종류에 대해 기억해봤다. 자, 갑니다. 칠리 프라이드 치킨 크리스피 프라이드 치킨 핫밤 소스 치킨 불고기 갈릭 소스 치킨 간장 치킨 달콤한 허니소스 치킨 스파이스&치즈 치킨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고소한 버터 치킨 - 인도 요리는 아니다! 프라이드치킨이다. 치킨 맛은 그냥 얘기하면 여긴 다 있다! 그들은 새콤달콤한 맛과 이상한 맛의 조합을 좋아한다. 나는 과일 맛 치킨과 커피 맛 치킨을 본 적이 있다. 민트 초콜릿과 민트 초콜릿 맛 치킨 만들기에 대한 집착은 너무 간 것 같다. 나는 민트 초콜릿 팬이 아니야!!!


    2021년 4월 17일 오후 7시30분

    내가 여기 한국에서 길거리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범죄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독특하고 가격도 싸기 때문이다. 한국 길거리 음식을 다 먹어본 건 아니지만, 내가 현재 좋아하는 종류대로 나열하겠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길거리 음식 전문가라고 자처했다!!!  가장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콘도그!! 한국 사람들에 따르면, 그것은 핫도그라고 불린다. 그것은 가장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고 거의 모든 교차로에 노점이 있다. 유명한 콘도그 체인점도 있다. 이건 단순히 소시지를 반죽에 묻혀낸 것이지만 그 독창적인 변화들은 놀랍다. 모짜렐라 스틱 콘도그나 소시지 반 모짜렐라 반 이런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소시지의 소스는 원하는 만큼 올릴 수 있다. (한 번은 내 친한 친구가 엄청 매운 콘도그를 먹고 우유 1리터를 다 마신 적이 있다:) 것 모습은 단순히 지루한 반죽이 아니다!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다. 고구마를 사각형 튀김조각으로 덮은 것이 있는데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콘도그 가판대에 놓인 소스의 다양성은 놀라울 정도다 (어떤 게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모든 병에서 뿜어내라). 떡볶이 또는 매운 라이스케익 볶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 그래서 한국의 길거리 음식이라면 당연히 떡볶이를 이야기한다. 떡볶이는 매우면서 맛있고 추운 날씨에 아주 적합하다. 그러나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진정한 즐거움은 소떡소떡이다. (소떡소떡)---소시지의 “소” 그리고 가래떡의 “떡”을 두 번 반복하여 붙인 말이다. 이 한국 길거리 음식은 꼬치에 떡과 소시지로 구성되어 있다(반복적으로). 매콤한 소스에 케첩과 머스타드를 뿌려 달콤하고 톡 쏘며 매콤하고 모든 것이 편하고 좋아!!!1 꼬치! 꼬치 하나면 100% 나아요!! 때때로 모짜렐라 치즈 토핑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모짜렐라를 더하면 모든 것이 100%로 나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떡 소떡 얘기를 하고 나서 어묵이 뭔지 모르면 오산이다. 어묵은 한국의 피쉬케잌이다. 생선만 먹는 게 아니라 해산물과 야채도 많이 들어간다.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꼬치에 꽂은 후 튀겨 먹으면 맛이 끝내준다. 게다가 건강에도 좋다. 길거리 음식에는 달콤한 종류가 많다. 난 단것을 잘 안 먹지만 떡볶이가 너무 맵거나 입가심으로 씻어야 한다면 :> 항상 단것을 먹는다. 호떡, 한국의 스윗 팬케크는 즐거움이다. 호떡은 보통 우리 동네 시장에서 플라스틱 컵에 담겨 판다. 왜냐하면 먹는 것이 덜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호떡은 정말 천상의 냄새와 맛이 난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시럽과 견과류로 속을 채운 두꺼운 팬케이크다. 단팥으로 속을 채운 또 다른 종류가 있다. 나는 그것의 팬은 아니지만 맛있는 것 중 하나다. 트위스트 도너츠인 꽈배기는 또 다른 유명한 달콤한 간식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뒤틀려 있는 가루 도넛과 같다! (더 나을 뿐) 김이 쏟아져 나올 때 뜯어보면 안쪽이 스펀지 같다. 맛있고 폭신폭신해! 나는 한국의 길거리 음식의 놀라운 세계에 대해 며칠 동안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가까운 동네 오픈마켓에서 푸드카트를 운영하는 모든 이모부들과 삼촌들(특히 아주머니들)을 사랑한다.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나에게 어묵을 하나 더 주신다 :>!! 그리고 내가 매일 그들에게서 많이 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021년 4월 22일 저녁 9시30분

    내가 전에 추측했듯이, 우리 교수님은 음식을 매우 좋아하신다. 그는 거의 매주 금요일 한가할 때마다 연구실 전체를 점심에 데리고 갔다. 그래서 이번 주에 그는 우리 모두를 근처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 데려갔다. 교수님은 이곳의 단골손님인 듯했고 주인 식당 아주머니는 우리 모두를 보고 너무 반가워했다. 그 식당은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이라 꽤 붐볐다 :>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는지 현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항상 좋은 징조다. 그가 대학생 때 오던 음식집이라고 했다. 여긴 정말 좋은 곳이다. 주방은 식당까지 개방되어 있어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볼 수 있다. 바로 눈앞에서 국수를 끓인다 (그렇게 싱싱하다!!!) 연구실에 있는 3명의 유학생들은 교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음식을 고르도록 허락해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여기서 무엇이 최선인지 알고있기 때문에). 그는 짜장면을 추천했고 그때 코란 요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리에 대한 나의 모든 경험이 바뀌었다. 바로 그거야! 짜장면은 검은 콩 소스를 곁들인 한중 퓨전 국수 요리이다. 아주머니가 먼저 삶은 면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거대한 그릇에. 그리고 나서 그녀는 내가 여태껏 본 것 중 가장 아름답고 좋은 냄새가 나는 짜장, 야채, 돼지고기 튀김으로 만든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소스를 가지고 왔다! 아주머니는 국수에 소스를 넣고 우리를 위해 섞어 주겠다고 했고 볼거리였기 때문에 초조하게 기다리고있었다! ! 짜장면 맛에 너무 빠져서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오늘 늦게 나는 이 요리에 대해 약간의 조사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말 노력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검은 소스는 발효된 밀가루, 콩, 카라멜 소스로 만든 한국식 짜장 춘장으로 만들어진다. 전형적으로, 짜장면에는 양파, 풋배추, 애호박, 감자 같은 야채가 많이 들어간다. 양파와 양배추가 짜장소스에 맛있는 단맛을 준다. 이 요리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그 앞에 다른 단어가 없을 때는 그냥 옛날 방식으로 만든 일반 짜장면을 말한다. 이 소스는 꽤 물기가 많다. 간짜장면은 일반 양념보다 더 진한 식감의 소스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야채와 고기 양이 꽤 넉넉하다! (오늘은 이렇게 먹은 것 같다). 삼선짜장면은 다양한 해산물이 들어간 음식을 말한다. 돼지고기 대신 생선, 새우, 오징어, 홍합과 같은 해산물이 들어간다 (맛있겠다). 쟁반짜장은 면을 양념장과 함께 볶아 큰 접시에 담아 나눠 먹는다. 나는 한국 요리에 알려진 모든 버전의 짜장면을 먹어볼 거야. 그만한 가치가 있어!!! 김치 만들기!! 난이도 10/10


    2021년 5월2일 저녁 9시30분

    여름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김치를 만들기로 결정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이 땅에 발을 디딘 이후로 하고 싶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 매우 드라마틱하다!!!! 우리 한국 친구들에 따르면, 그것은 꽤 많은 관심과 준비,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를 말렸다. 하지만 나는 모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 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나와 내 두 친구는 한국 친구에게 레시피를 부탁했고 그녀는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녀는 예방접종 때문에 막판에 열이 나서 미션에 3명밖에 안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레시피를 준비했고 김장하는 영상들을 인터넷으로 많이 보고 금요일 저녁에 미션을 시작했다. 우리는 오픈마켓에서 Napa 양배추를 발견하고 3개를 가져왔다. (좋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몰랐다.) 우리는 양배추를 반으로 자르고 레시피에 따라 소금에 절였다. 얼마나 많은 소금을 넣어야 하는지를 구하는 계산법이 있었다! 그리고 잎의 단단한 부분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놓아두었다. 양념이 까다로웠다. 김치 양념을 사야 하는데 진짜 방식대로 하기로 했다. 마늘, 생강, 새우젓(새우 발효물, 냄새남) 쌀물, 고추장, 생선소스, 물(넣어야 할 것이 꽤 많았는데 마지막에는 뭘 넣었는지도 모르겠다)를 준비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채소들은 양념과 함께 추가되었다. 우리는 무와 파를 사용했다. 채소를 가늘게 자르고 소금을 약간 넣는다. 다음 단계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깨끗이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것이다. 너무 많은 시간과 많은 물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이때 우리는 지쳐 있었고 6, 7시간 동안 일을 해도 김치 모양의 것을 먹지 못했다. 그리고 진짜 제대로 된게 시작됐다. 조리법은 소금에 절인 배추에 양념장을 부드럽게 문질러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양념 혼합물이 매우 매운 줄 몰랐다. 우리는 배추3개에 양념을 바르고 서로에게 김치양념 얼굴 마사지를 주고받으며 끝났다!!! 얼굴이 너무매웠다. 그리고 배추를 (3번 이상 세수 후에) 포개서 용기에 보관하고 냉장고 전체에 김치로 채웠다. 김치가 빨리 익어서 음식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열심히 만든 김치로 만들 음식들!!
    1. 김치 덤플링 (김치만두) 2. 김치 프라이라이스 (김치볶음밥) 3. 김치 스튜 (김치찌개) 4. 김치 팬케이크 (김치부침개) 5. 김치우동

    그리고 매일 김치랑 밥 많이 먹기!!!


    2021년 5월15일 저녁 10:30분

    매일 한식이야기에서, 사교적 음주에 관한 것을 빠뜨리면 나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술을 안 마시지만 많은 한국 친구들이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실 때 같이 앉았던 호기심 많은 사람이다 :>>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거의 매일 있는 일이다. 그들은 알코올에 대한 내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술을 마시는 재미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 술자리 게임은 언제나 보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화학자로서 나는 칵테일 혼합기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필연적으로 궁금하다. 소주는 그만큼 유명하고 소비되기 때문에 한국의 국민 음료로 명명되어야 한다. 이 저알코올 정신 (보드카보다 강하지만 그래!!) 한국에서 수백 년 동안 주로 쌀이나 다른 곡물로 증류되어 왔다. 쌀 소주가 금지된 후에는 고구마나 타피오카 같은 다른 대체 녹말을 사용하여 발효되었다. 금지 해제 이후에도 소주 제조의 대체 방법은 그 인기에 힘입어 계속되었다. 소주는 보드카처럼 중성적인 맛이 나지만 (술친구들에 따르면) 절반 정도의 알코올이 함유돼 있어 심한 알코올 연소가 없다. 소주에는 도수가 다른 여러 종류의 술이 있다. 병뚜껑의 색깔은 소주가 얼마나 강한지를 나타낸다! (때로는 맛이 좋은 소주도 다른 뚜껑이 있다.) 녹색이나 파란색 뚜껑은 보통 마시는 뚜껑이다. 빨간색은 알코올이 조금 덜 들어 여자들이 자주 마신다 (나는 술을 고르는 방법을 모르니 나의 조언은 듣지 마).  전통적으로 음식과 함께 바로 먹지만 칵테일에 섞기도 한다. 여기에서 맥주가 등장한다. 그냥 맥주인데 일반 소다처럼 마실 수 있다!! 소주가 맥주와 섞일 때 소맥이 극적으로 탄생한다. 소맥의 소주와 맥주 비율은 30과 70%이다. (아무도 30에서 70까지 측정하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잰다!!). 그들이 소맥을 마시는 것을 본 재미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 맥주잔에 소주잔을 떨어뜨리는 것은 지루한 방법이다.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놓고 그 위에 소주잔을 놓는다. 그런 다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 작은 소주잔이 맥주 잔에 떨어지면서 일련의 거품을 만들 수 있다 (볼만해). 소맥 쓰나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다. 맥주잔에 소주잔을 떨어뜨린 뒤 저어준다(젓가락을 세게 부딪히는 것). 그래서 맥주잔에 허리케인 같은 거품이 일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책임감 있게 술을 마신다!!!


    2021년 6월3일 오후 3시30분

    이번 주 최고의 경험은 코리안 바비큐다. 바쁜 근무 후, 실험실 동료들은 금요일 밤에 기분을 풀기 위해 KBBQ에 가기로 결정했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식당이 늘 그렇듯 붐볐다. 테이블 중간에 숯불 그릴이 세팅 되어 있다. (정통 방식! 가스레인지 그릴이 있는 곳도 봤다). 이 식당은 폐쇄된 벽이 없었고 통풍도 잘 되고 고기 냄새도 정말 좋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공기밥은 몇 개냐 고 물었고 나의 한국인 동료들은 공기밥을 주문했다. (나는 밥이 아니라 고기를 먹으러 온 거야!!) 그리고 나서 그녀는 다양한 종류의 고기가 담긴 거대한 접시의 우리 음식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소갈비, 소불고기, 삼겹살 그리고 치킨도 먹었다. 불고기는 양념이 되어 있는데 다른 고기는 양념 없이 구웠다. 테이블은 반찬, 소스, 그리고 많은 잎이 무성한 야채들로 채워졌다. 소주는 KBBQ에 더해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같이 온 사람 중에 가장 어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고기를 굽고 대접할 책임이 있다! 막내는 고기를 굽기 시작했고 반쯤 익힌 후 한 입 크기로 잘랐다. 허공에서 아주 눈부시고 즐거운 냄새가 났다. 바비큐 고기를 먹는 방식은 한국식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여기서 상추나 깻잎 등 좋아하는 채소를 골라야 한다. 그리고 구운 고기를 넣고, 김치(혹은 좋아하는 다른 반찬)를 넣고, 밥(마늘 한 덩어리)을 조금 넣고, 입에 넣는다!!! 맛의 혼합은 신성하고 좋은 동료들은 코리안 바비큐를 훨씬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

  • 장려상

    한식일기

    Nipuni Dineesha

  • [백일장]

    추억의 밥상

    작품내용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매우 개인적인 기억이고, 이러한 기억들을 공유함으로써, 사람들이 매일의 식사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매일 이 모든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멋진 경험이었고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 몇몇 가족들과의 추억이 그리웠습니다.

      어린 시절,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부엌에서 분주하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의 뒷모습이었다. 

    감자를 가늘게 채썰어 넉넉하게 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 볶고, 그 와중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에 서둘러 다진 고추와 두부를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갓 지어진 고슬고슬한 밥을 적당한 양으로 퍼서 밥그릇에 담고, 된장찌개와 김치, 감자채 볶음, 맛깔스럽게 조려진 우엉조림, 보들보들하게 잘 익은 계란찜, 여기에 한장한장 들기름을 발라 고소하게 구운 김까지 접시에 담아 올리면 한상 가득 먹음직스러운 아침상이 차려진다. 

    외할머니 집에 놀러가면 외할머니의 질문은 늘 "밥 먹었니?"로 시작했다. 하지만 내 대답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주섬주섬 부뚜막으로 가서 작은 개다리소반에다 갈치김치를 곁들인 라면을 끓여 가져다주시곤 했다. 갈치김치는 외할머니 집에서만 맛볼 수 있었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내게는 정말 특별한 김치였다. 외할머니는 아파서 돌아가시 전까지 매년 김장할 때 싱싱한 생갈치를 작게 토막을 친 다음 양념속에 함께 버무렸다. 겨우내 김장김치 안에서 잘 삭은 갈치는 쫄깃하고도 매콤한 식감이었고, 뼈가 오도독 씹히곤 했으며, 라면은 물론 흰 쌀밥과도 정말 잘 어울렸다. 그렇게 한그릇 뚝딱 비워내고 볼록한 배를 두드리며 따뜻한 구들목에 펼쳐진 담요 속으로 쏙 들어가면 세상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시골 장터 한켠에는 늘 비릿한 닭비린내가 났다. 닭집 주인은 갓 잡은 닭을 펄펄 끓는 물에 넣었다가 빼내 닭털을 능숙하게 뽑은 다음 가게 앞에 몇마리씩 진열했다. 요즘은 닭의 내장을 모두 제거하고 깨끗하게 포장해서 닭을 팔지만, 내가 어린 시절 살던 시골에서는 닭의 머리와 닭발까지 모두 붙어있는 온전한 한마리의 닭을 통째로 팔곤 했다. 엄마는 그 닭을 사서 직접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암탉의 뱃속에는 미처 계란이 되지 못한 노른자가 대여섯개 정도 마치 포도알처럼 조롱조롱 자리잡고 있었는데, 가장 아래쪽의 노른자가 가장 컸고,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점점 작아져서 맨 위쪽에는 콩알만한 노른자가 매달려 있었다. 이 노른자는 일반적인 계란을 삶았을 때의 식감보다 훨씬 더 쫄깃하고 찰졌다. 닭고기를 토막쳐 푹 익힌 닭볶음탕 앞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칼칼한 국물과 함께 적당히 양념이 잘 배어든 닭고기를 한입 베어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을 만큼 행복했다. 한끼 밥상으로도 쉽게 행복할 수 있었던 내 어린 시절의 그 단순했던 포만감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까다로와지고, 더 느끼기가 어려워지고 있지만 말이다. 

    여름날의 밥상도 생각난다. 할머니는 집앞 마당에서 키우던 콩잎을 따서 밥과 함께 쪄내셨다. 콩잎을 조심스럽게 펴서 그 위에 밥 한숟갈 얹고, 참기름과 간장, 고춧가루, 깨소금을 듬뿍 넣은 양념장을 발라 입속에 넣으면 콩잎 특유의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마당에서 딴 고추를 어슷 썰어 밀가루와 반죽해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고추전, 깻잎을 살짝 삶아 양념장을 발라서 먹었던 향긋한 깻잎무침,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의 여름 밥상은 늘 밭에서 딴 푸성귀들로 풍성했었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먹었던 육개장의 기억도 강렬하다. 핏빛처럼 선명했던 그 빨간 국물의 육개장은 슬픔에 잠겨있던 내게 외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차려주는 밥상 같았다.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은 육개장은 순식간에 혀를 감싸는 칼칼한 매운 맛과 풍성한 야채의 풍미로 어린 나를 사로잡았다. 육개장의 매콤함은 장례식장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득해져가는 내 정신을 깨웠고, 간간히 씹히는 부드러운 고기와 계란, 버섯 등 영양 가득한 건더기들은 내 육신에 힘을 불어넣었다. 말수가 많지 않고 무뚝뚝했지만 잔정이 많았던 외할머니와의 추억들이 방울방울 육개장의 국물 속으로 스며들어 내 혈류를 타고 온 몸을 휘감았고, 슬픔 속에서도 허겁지겁 육개장을 들이키는 첫 외손녀의 모습을 외할머니는 저 먼 곳으로 가시기 전에 흐뭇하게 바라보시지 않았을까 싶다.

    칼국수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에 우리의 일요일 점심은 늘 칼국수였다. 사실 아버지가 정말 칼국수를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 한동안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던 어린 시절, 엄마는 늘 시장 한켠에 파는 칼국수를 사서 일요일 점심을 준비했고, 그래서 우리는 지겹도록 칼국수를 먹어야 했다. 시장에서 한사람 겨우 들어갈 만큼 작은 공간에 천막을 쳐놓고 장사를 했던 칼국수 할머니는 칼국수 천원어치를 시키면 미리 만들어놓은 반죽 한덩이를 꺼내 밀대로 빠르게 밀기 시작했다. 반죽이 도화지마냥 얇게 밀리면 할머니는 할머니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식칼을 꺼내 빠른 손놀림으로 칼국수를 썰어냈다. 비닐봉지에 담긴 칼국수를 들고 집에 들어서면 집안은 이미 비릿한 멸치 육수 냄새로 가득했다. 엄마는 애호박, 감자, 양파, 파 등이 함께 들어가 있는 육수에 내가 사온 칼국수를 던지듯 밀어넣었고, 금세 국물은 칼국수의 밀가루 덕분에 뿌옇게 바뀌곤 했다. 뜨겁고 텁텁한 그 칼국수에 아버지는 잘 익은 김치를 곁들여 정말 맛있게 드시며 "어, 시원하다"를 연발하곤 했다. 뜨겁기 짝이 없는 그 국물이 왜 시원한지 어릴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국식당에서 펄펄 끓는 설렁탕 한그릇을 들이키며 시원하다고 외치는 나를 남편과 아이들은 경악과 경이가 뒤엉킨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때는 몰랐다. 어린 시절에 너무나 당연히 생각했던 그 밥상이 얼마나 귀한 밥상이었고, 지금은 다시 돌리고 싶어도 돌릴 수 없는 추억의 밥상이었다는 것을. 

    나는 현재 미국인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미국에서 산 세월이 더 많아지고 있지만, 한국 밥상은 여전히 내게는 어렵다. 어린 시절 엄마가 그렇게 매일 하루 세끼를 뚝딱뚝딱 만들어냈던 그 한국 밥상이, 내게는 마치 난해한 숙제같다. 재료도 구하기 힘들고, 요리솜씨도 전혀 없어 늘 실패하거나 이 맛이 아닌데를 되뇌이며 고개를 갸우뚱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매끼니는 밥 대신 부리또나 햄버거, 샐러드, 스파게티 같은 미국식 식단으로 가족의 식탁이 채워지지만, 나는 여전히 미국식 밥상 앞에서 꿈꾸듯 한국식 밥상을 그린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김치찌개에 생선구이, 담백한 두부 부침, 한입에 쏙 들어가는 메추리알조림, 매일 메뉴를 달리해서 상에 올리던 시금치, 콩나물 등의 야채 무침, 매콤달콤했던 멸치조림 등이 올려지곤 했던 소박한 그 밥상. 그 밥상 앞에서 마주하며 함께 밥을 먹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제는 내 곁에 없지만, 그 추억의 밥상들과 함께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내 뇌리의 한켠에 남아있다. 

    지난 봄, 뒷마당에 가꾸어놓은 텃밭 사이로 크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민들레를 뽑아다 깨끗하게 씻었다. 밥을 지어 민들레쌈을 만들어 먹고 있으니 아이들은 엄마가 왜 잡초를 먹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콩잎 대신 민들레 잎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는 나를 너희들이 이해할리가 없지. 아이들을 그때 그 시절로 데려가 싱그러웠던 내 어린 시절의 여름날을 보여주고 싶다. 민들레 잎 하나만으로 왜 그날의 내 식탁이 충분히 풍성했는지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 장려상

    추억의 밥상

    Alice Lamphier

  • [백일장]

    한식에 대한 빤뚠

    작품내용

    이 빤뚠들에는 맛도 있고 할랄에 속하는 이슬람교도 친화적인 한국 음식과 제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운문 혹은 빤뚠을 담고 있습니다. 각 운문은 4행으로 구성되어있고, 하나의 한국 음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빤뚠에 하나의 음식이지만 각각은 서로 연관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Jalan-jalan sama si Rama
    Perginya ke Vienna
    Paling enak nonton drama
    Ditemenin sama dalgona

    Cabut paku nancap di tembok
    Biar gampang pake tang
    Pergi makan sama Si Mbok
    Mesennya menu samgyetang

    Ada nelayan pergi melaut
    Pulang melaut dapet teripang
    Paling enak kalau lagi gabut
    Ngedrakor ditemenin bungeopang

    Warna coklat bawang goreng
    Warna hijau daun suji
    Paling enak makan basreng
    Ditemenin acar danmuji

    Ada lebah sukanya nyengat
    Adik kecil pipinya gemuk
    Hujau-hujan makan yang hangat
    Makan mi kuah ditambah eomuk

    Anak kecil menangis kencang
    Berhenti nangis digendong bibi
    Sarapan pagi bubur kacang
    Makan siangnya pakai dakgalbi

    Siang-siang bikin bakmi
    Masaknya pakai jerami
    Makan nasi pakai gurami
    Ditemenin acar dongchimi

    Muka sedih habis nangis
    Senyum makan gula jawa
    Kalau cari kue manis
    Ya sudah pasti yakgwa

    Jalan-jalan ke sauna
    Di sauna menggosok daki
    Kalau lagi gundah gulana
    Paling enak makan tteokbokki

    Bayi menangis tengah malam
    Menangis kencang minta susu
    Kedinginan lepas malam
    Dihangatin pakai kalguksu

    Menyapu teras yang berdebu
    Nyapunya pakai sapu ijuk
    Ingin masak bareng ibu
    Nyobain resep hobakjuk
    Pergi piknik ke pedesaan
    Tidurnya di rumah gubuk
    Ulang tahun bikin selamatan
    Ngerayainnya pakai miyeokguk

    Ada kontes internasional
    Kontes menulis berhadiah mantap
    Makan masakan Korea tradisional
    Pakai kimchi tambah sedap

    Membeli sayur pergi ke pasar
    Membeli minyak langsung di kilang
    Makan bibimbap semangkuk besar
    Langsung kenyang sampai pulang

    Pergi piknik ke bendungan
    Pergi berdua sama Andrea
    Siang-siang kepingin gorengan
    Bikin pajeon si bakwan Korea

    Ambil layangan di pohon beringin
    Tidak usah memanjat pager
    Cuaca panas pengen yang dingin
    Minum bingsoo emang paling seger

    Ada kucing makan tuna
    Dimakan habis karena rasanya
    Beli sikhye di sauna
    Ditemenin telur rebus pastinya

    Bawa keranjang berisi buah
    Bawa dipikul di atas bahu
    Kepingin makan sayuran berkuah
    Ada Sundubujjigae si sayur tahu

    Pergi ke Korea buat rekreasi
    Ingat Indonesia sudah pasti
    Saat kangen cireng isi
    Beli hotteok untuk mengobati

    Menanti ayah dari luar pulau
    Sampai malam menunggu hilal
    Tidak perlu sedih ataupun galau
    Ada makanan Korea enak dan halal




    라마와 길을 걷고 있네
    비엔나로 가려고 하네
    가장 즐거운 건 드라마를 시청
    달고나와 함께 시청

    벽에 박혀있는 못을 뽑자
    펜치를 사용해서 쉽게
    아주머니와 함께 먹으러가자
    삼계탕을 주문하게

    바다로 간 어부가 있네
    바다에서 돌아올 땐 잡은 해삼과 함께
    여유시간이 제일 좋네
    한국 드라마를 붕어빵과 함께

    갈색 빛의 양파 튀김
    녹색 빛의 잎사귀
    가장 맛있는 건 어묵 튀김
    함께 먹는 건 초절인 단무지

    쏘는 걸 좋아하는 꿀벌
    볼이 포동포동한 동생이 있네
    비가 올 땐 따뜻한 음식을
    라면과 어묵과 함께 먹네

    아이가 크게 운다
    아주머니가 안아주니 울음을 그친다
    녹두죽은 아침식사
    닭갈비는 점심식사

    점심에는 국수 만들기
    짚을 사용해서 요리
    식사는 구라미
    함께 먹는 초절인 동치미

    울고 난 뒤 슬퍼지면
    흑설탕 먹고 미소 짓죠
    달달한 간식을 찾고 있다면
    무조건 약과이죠

    찜질방에 가면
    사우나에서 때밀이
    고민이 많다면
    가장 좋은 건 떡볶이

    깊은 밤 아기가 울때
    우유를 달라고 크게 운다
    밤에 몸이 추워질 때
    칼국수로 몸을 녹인다

    먼지가 쌓인 테라스를
    빗자루로 청소한다
    한번쯤 요리하고픈 호박죽을
    엄마와 함께 만들고 싶다

    시골마을로 가는 소풍에
    오두막에서 잠들어본다
    생일 잔치를 준비중에
    미역국으로 축하해본다

    국제 공모전이 있을 땐
    상품이 어마어마하네
    한국 전통음식을 먹을 땐
    김치와 먹으면 어마어마하게 맛있네

    야채는 시장에서 사고
    기름은 기름공장에서 사네
    양푼비빔밥을 먹고
    집에 갈때까지 배부르네

    댐으로 소풍 갈 땐
    안드레아와 둘이 가기
    오후에 튀김이 땡길 땐
    한국의 부침개 파전을 만들기

    큰 고무나무에 걸린 연을 가져오려면
    울타리를 뛰어넘을 필요는 없을걸
    더운 날씨에 차가운 걸 먹고싶으면
    빙수를 먹는게 가장 시원할걸

    참치를 먹는 고양이는
    맛있어서 다먹었네
    찜질방에서 구입한 식혜는
    삶은계란과 함께 다 먹었네

    과일이 가득한 바구니를
    어깨에 지고 가져오네
    식욕이 가득한 입맛을
    순두부찌개로 채우네

    여행 삼아 한국에 갈 때
    인도네시아가 그립겠네
    치랭이 그리울 때
    약삼아 호떡을 먹겠네

    멀리 있는 아버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리다
    슬프거나 걱정스러운 마음을
    맛있는 한국의 할랄음식으로 지운다
               

  • 장려상

    한식에 대한 빤뚠

    Sofiyah Al Ghiptiyah

  • 2021 제2회 한식 콘텐츠 스토리텔링 공모전

    (03059)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8 지번 재동 54-5
    대표번호 : 02)6320-8400 | 팩스 : 02)6320-8499

    ⓒ 2021 KFPI (Korean Food Promotion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jejuwebplan